미란다를 최고 투수로 만든 '두산의 디테일'
[경향신문]
작년 대만리그서 ‘들쭉날쭉 투구’
동기부여·맞춤 처방에 기량 만개
시즌 13승 MVP급 활약 ‘웃음꽃’
두산 외국인투수 아리엘 미란다(32·사진)는 지난 5월 중순까지만 해도 경기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어떤 날은 웬만한 메이저리거 부럽지 않은 가공할 구위를 보이다가도 또 어떤 날은 형편없이 무너지며 상대팀뿐 아니라 그를 영입한 두산 관계자들까지 헷갈리게 했다.
사실, 미란다는 두산이 대만리그(CPBL)에서 나름의 계산 속에 영입한 선수였다. 지난해 대만리그 중신 브러더스에서 거둔 성적은 10승8패 평균자책 3.80. 수치상 대단할 건 없었다. 그러나 현지 구단과 계약 내용상, 미란다가 동기 부여 속에 전력을 다하기에는 허점이 있던 것으로 두산은 파악하고 있었다. 그의 스카우트 경쟁팀 가운데는 삼성도 있었지만 두산은 확신을 갖고 먼저 달려가 미란다의 손을 꽉 잡았다.
시범경기 이후로 부침이 심하자 두산은 섬세한 시각에서 미란다를 ‘정상 항로’로 유도했다. 하나는 날씨 문제였다. 늘 따뜻한 곳에서 뛴 것은 아니지만 쿠바 출신으로 기후 환경에 민감한 편인 미란다는 시즌 준비 과정에서 “손 감각이 완전치 않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는 시즌 초반까지의 제구 난조로 연결되기도 했다.
또 하나는, KBO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한 기술적 접근이다. 키 188㎝의 장신 좌완투수로 릴리스포인트가 높은 데다 포크볼을 던지는 특장점이 있는 미란다는 시즌 초반 포크볼을 홈플레이트에 떨어뜨리는 유인구로 사용하려 애를 썼다. 이는 제구 어려움으로 이어져 투구 수가 늘어나는 원인이 됐다.
이 대목에서 나온 두산 전력분석팀의 조언은 그 정도 릴리스포인트에서 나오는 포크볼이라면 한복판으로 던져도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포크볼이든 뭐든 그냥 카운트 잡으러 가도 된다. 네 공 못친다”는 진단과 처방이 나왔고, 미란다는 구단 관계자들의 마음에 쏙 들게 답을 했다. 미란다는 지난 5월19일 KT전까지 8경기에서는 4승3패 평균자책 3.76으로 평범한 성적을 이어갔지만, 이후 16경기에서는 9승2패 평균자책 1.85의 압도적인 성적을 이어가고 있다. 또 개막 이후 8경기에서 이닝당 20.4개에 이르던 투구 수도 이후로는 15.4개로 대폭 줄어들며 이닝 소화력도 크게 늘어났다.
미란다는 4일 현재 시즌 13승5패 평균자책 2.33에 탈삼진 194개를 기록하고 있다. 다승과 평균자책, 탈삼진 모두 1위로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을 넘어 시즌 MVP 경쟁까지 뛰어들었다.
시즌 최고 외인투수가 두산에서 나온 게 생소한 일은 아니다. 앞서 세 시즌도 리그 최고 외인투수는 두산에서 연이어 탄생했다.
2018년에는 조쉬 린드블럼(15승)과 세스 후랭코프(18승)가 원투펀치로 투수 각 부문을 주도했고, 2019년에는 린드블럼이 20승3패 평균자책 2.50으로 시즌 MVP까지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라울 알칸타라가 20승(2패) 고지에 오르며 시즌 최고 투수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투수 친화적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데다 야수진 특유의 공수 지원으로 두산은 외인투수에게는 최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다시 빛나는 것이 그에 맞는 두산의 처방이다. 올 시즌 미란다의 성공도 우연은 아니다.
안승호 선임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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