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땐 '강한 방역'서 '튼튼한 의료'로..경증 환자 증가 대비를"

이창준 기자 2021. 10. 4.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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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경향신문]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이 지난 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위드 코로나’를 앞두고 정부가 집중해야 할 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높은 접종률 등 안전지표가 되레 안전불감증 유발할 수도
거리 좁히면 바이러스가 백신 미접종자들만 찾아 퍼질 것
고령층엔 ‘폐렴’ 가까워…올겨울 계절 독감 겹칠 땐 혼란

“위드 코로나(with COVID·코로나와의 공존)는 백신을 맞아 안심한 채 일상 회복이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상황이 아닙니다. 위드아웃 코로나(without COVID·코로나 없는 일상)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바이러스와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선택한 겁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연구실에서 만난 오명돈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미 지난 5월 코로나19의 토착화를 전망하고 방역과 일상의 균형을 누구보다 강조해온 오 위원장은 ‘위드 코로나’의 문턱에서 오히려 신중했다. 그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국민들에게 ‘코로나19가 위험하지 않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오 위원장은 “코로나19는 독감처럼 관리된다고 해도 여전히 위험한 질병”이라며 “남은 한 달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위드 코로나 이후 더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위드 코로나는 패배의 결과”

오 위원장은 위드 코로나로 국내 방역체계를 전환하게 된 원인을 “코로나19에 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2배 이상 높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국내에서도 우세 변이가 되면서 거리 두기는 물론, 백신 접종으로도 더 이상 유행을 막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20~26일 주간 국내 델타 변이 검출률은 99.5%로 집계됐다. 국내에서 발생한 거의 모든 확진자가 델타 변이에 감염됐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지만 4차 유행의 규모는 계속 커져가고 있다.

이처럼 위드 코로나에는 ‘코로나19는 종식이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오 위원장의 설명이다. 종식이 불가능하지만 강한 거리 두기 단계를 유지하며 경제적 피해를 지속시킬 수 없으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방역을 완화하고 일상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오 위원장은 위드 코로나가 일각에서는 성공적인 방역과 백신 접종으로 인한 전리품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방역을 잘하고, 백신 접종 성적이 우수해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선택하는 상황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위드 코로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확산을 피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적과 동침하는 것이고, 오히려 우리가 아닌 바이러스가 선택한 상황입니다.”

■ 백신 접종률의 허와 실

정부는 단계적 일상 회복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조건으로 성인 기준 80%, 60세 이상 고령층 기준 90%의 백신 접종 완료율을 제시했다. 일정 수준 이상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 코로나19로 인한 위중증률과 치명률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방역 수준을 완화해도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백신 접종률, 그로 인한 위중증률과 치명률이 일종의 안전 지표로 제시된 것이다.

오 위원장은 그러나 높은 백신 접종률이나 낮은 치명률이 오히려 코로나19에 대한 안전불감증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백신 접종 여부, 접종 후 경과일, 연령대 등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개개인의 위험은 다 다른데 ‘백신 접종률이 높아졌고 치명률이 낮아졌다’고만 하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바이러스가 얌전해졌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오 위원장은 고위험군 백신 미접종자를 지금처럼 둔 채 단순 접종률에 따라 11월 이후 방역을 완화하면 유행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코로나19에 무방비인 이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말 18세 이상 미접종자의 사전 예약이 종료된 가운데 접종 예약을 하지 않은 60세 이상 백신 미접종자 수는 102만9111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빨라도 오는 18일부터 1차 접종을 받을 수 있다. 4주의 접종 간격과 접종 후 면역 형성 기간(2주)을 고려하면 12월 초까지 100만명이 넘는 60세 이상 고령층이 미접종 상태로 남아 있는 셈이다. 정부는 10월 말쯤 성인 백신 접종 완료율이 80%를 넘길 것으로 보고 11월 초부터 방역 조치를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오 위원장은 “이 상태에서 거리 두기 단계를 낮추면 바이러스가 겨울철에 백신을 안 맞은 사람들만 찾아서 퍼져 나갈 것”이라며 “당장 내일부터라도 고령층 미접종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백신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 “‘독감화’ 아닌 ‘폐렴화’”

심지어 백신을 맞았더라도 여전히 코로나19로 인한 위험은 남아 있다. 오 위원장은 “백신의 효과가 애초에 100%가 아닌 데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는 더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며 “65세 이상 고령층과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은 부스터샷(추가 접종)도 늦지 않게 맞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스라엘에서 지난 7월11~31일 사이 발생한 60세 이상 코로나19 중환자의 백신 접종 시기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접종 후 6개월이 지났을 경우 1만명 중 3명꼴로 중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까지 국내 60대 이상 백신 접종 완료자는 1150만여명으로, 이스라엘 사례를 국내에 적용하면 이번 겨울철 중환자 수는 매주 400명에 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기준 코로나19로 인한 월간 치명률은 0.3%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치명률이 지금보다 더 감소하면 코로나19는 계절 독감처럼 관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 위원장은 60세 이상 고령층에게 코로나19는 계절 독감보다는 폐렴에 가까운 질병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령층이라도 계절 독감으로 사망할 확률은 극히 드물지만 폐렴으로는 60대 연령층에서도 0.1%가량이 사망한다”며 “코로나19의 위험도 그와 동등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60세 이상 폐렴 사망자 수는 2만2395명으로 같은 기간 60대 이상 교통사고 사망자 수(1797명)에 비해 10배 이상 많았다.

■ “의료체계 확충해야”

오 위원장은 위드 코로나를 한 달 앞둔 지금 정부가 가장 집중해야 할 숙제로 지속가능한 의료대응체계 확립을 꼽았다. 그는 “지금의 위드 코로나 논의는 방역이나 사회, 경제 시스템을 어떻게 원활하게 돌아가게 할 것인지에 집중돼 있다”며 “환자가 늘어나면 중증·경증 할 것 없이 의료 수요가 크게 늘 텐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집중 관리 대상인 위중증 환자 외에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경증 환자의 의료 수요를 만족시키려면 기존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 이어지는 일상적 의료전달체계가 코로나19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확진자 추적 검사체계와 격리시설 등 ‘확진자 최소화’를 위해 설계된 ‘K방역’의 일부 요소는 과감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코로나19 박멸을 포기한 이상 강한 방역에서 튼튼한 의료체계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야 한다”며 “사실상 치료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생활치료센터를 줄여 가고, 많은 경증 확진자들이 집이나 동네 의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올겨울이 걱정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백신 미접종자 위주로 중환자 수가 증가하는 한편 폭증하는 경증 환자를 의료체계가 감당하지 못해 의료 공백 상황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했다. 겨울철 유행하는 계절 독감까지 닥치면 의료 현장의 혼란이 더 가중될 우려도 있다.

“11월에는 틀림없이 바이러스가 빈 곳을 찾아 스며들 겁니다. 한 달 동안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감당할 부담이 상당히 차이가 날 거라 봅니다. 이 기간 허송세월하면 11월 이후에는 혼란이 정말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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