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박지성의 개고기 송
[경향신문]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 축구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선 박지성은 이듬해 초 꿈에 그리던 유럽 무대에 진출한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에 입단했다. 첫 시즌에는 헤매기만 해 홈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공만 잡으면 야유가 나와 공이 오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 시즌부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자 야유가 함성으로 바뀌었다. “위송빠레, 위송빠레~” 영문으로 표기된 그의 이름 ‘지성 박’을 중독성 있는 리듬에 맞춰 현지 발음으로 연호하는 그 응원가가 이때 나왔다.
이후 박지성은 한국인 첫 프리미어리거로 2005년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해 2012년까지 전성기를 보낸다. ‘두 개의 심장’ 또는 ‘산소 탱크’라는 별명과 함께 맹활약한 그 시절에도 팬들이 만들어준 박지성 응원가가 있었다. 일명 ‘개고기 송’이다. “박(지성)~박~ 네가 어디 있든 네 나라에선 개고기를 먹지. 그래도 임대주택에서 쥐를 잡아먹는 리버풀보다는 낫지”라는 가사의 노래다. 박지성을 응원하는 동시에 앙숙인 리버풀 구단과 팬들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차별과 비하를 담고 있어 ‘최악의 응원가’로 꼽히기도 했는데 지금까지도 불린다고 한다.
박지성이 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 노래를 멈춰달라”고 팬들에게 요청했다. 그때는 팬들이 만들어준 응원가가 고맙고 자랑스러웠기에 가사가 다소 불편했어도 받아들였지만 15년이 흐른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가사 내용이 영국에만 있는 고정관념이고, 한국인들에 대한 인종적 모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뒤 누군가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불편하게 만드는 노래를 멈출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국내에서 개고기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달라졌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설 정도로 개 식용 금지 조치를 신중히 검토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영국의 ‘개고기 송’ 문제는 굳이 한국 상황에 상관지을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 어떻든 간에 진작 없앴어야 마땅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그들의 그릇된 선입견일 뿐이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는 핑계로 내버려 둘 일이 아님을 이참에 그들도 깨달아야 한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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