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플레이션 공포] 정부, 재원대책 없이 '탄소세'만 만지작

박정일 2021. 10. 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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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 천문학적 비용 부담 우려
수익성 악화·제품 가격 상승까지
"탄소배출권에 세금까지 이중고"
고로 쇳물 선출 작업. <포스코 제공>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공>
전국경제인연합회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탄소중립 정책' 설문조사 결과. <전경련 제공>

세계 주요 국가 뿐 아니라 우리 정부도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준비 중이다. 반면 주요 탄소배출 업종에서는 국내 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응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철강업계의 탄소중립 핵심 기술로 꼽히는 수소환원제철의 경우 국내에 있는 기존 고로를 전환하는 데에만 수십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비용 부담을 고려해 각계각층은 기술·설비예산 지원, 일자리 보장 등 다양한 요구를 내놓고 있는데,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제조 원가 부담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소위 친환경 비용부담이 물가를 인상시키는 '그린플레이션'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이 과도하다며 산업계의 의견을 들어줄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4일 온실가스·에너지목표관리제 대상 업체 350곳(응답업체 126개)를 대상으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4.1%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으로 경영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고 답했다.

국회는 앞서 2030 NDC를 기존 2017년 대비 24.4% 감축에서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으로 강화한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기업들은 이로 인해 '배출권 구매·규제강화 대응 등 기업부담 증가'(39.5%),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 하에서 감축여력 한계'(34.9%), '2030년까지 탄소감축 기술 상용화 불가'(18.6%), '신재생에너지 발전 확대 한계로 전력요금 인상 등 기업부담 증가'(7.0%) 등의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세계 최고 수준의 철강 기술을 보유한 포스코 역시 탄소저감 목표 달성의 필수인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완료 시점을 2040년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수소환원제철 전환에 드는 비용만 30조~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를 앞당기려면 정부의 예산·정책적 지원이 필요한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것은 없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30년까지 1조 유로(약 1375조원), 미국과 일본은 2025년까지 각각 2조 달러(약 2374조원), 30조엔(약 320조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각각 내놓은 바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다면 이 같은 투자금액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철강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또 전기요금 인상과 탄소세 부담 등도 우려했다. 이날 전경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전원 믹스(재생에너지 2020년 6.6%→2050년 56.6~70.8%)를 강행할 경우 전기요금이 평균 26.1%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주요 배출업계는 탄소중립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탄소세 도입은 국내 제조업의 탄소비용 부담을 크게 가중시키는 동시에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탄소누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적용받고 있는 업종에 대해 탄소세를 과세할 경우 이중규제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추진에 따라 탄소세를 걷으면 철강·비철 업체의 생산 비용이 2050년까지 매년 최대 4.5%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따른 부담 호소는 공산품 제조업체 뿐 아니라 농·수산물, 폐기물 등 다양한 업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탄소중립위에 제출한 각계 의견서를 보면 농·축산업계에서는 온실가스 통합 관리를 위한 정부의 역할과 관련 예산 확대를, 수산업계에서는 무분별한 해상풍력발전 건설 반대 및 상생협력 방안 마련을, 폐플라스틱 재활용 업계에서는 부담·분담금 축소와 탄소배출권 인정, 연구·개발(R&D) 세제 지원 등을 각각 요청했다.

유환익 전경련 기업정책실장은 "탄소중립 정책은 우리 경제와 산업의 근간을 바꾸는 것인 만큼 충분한 검토와 폭넓은 의견수렴이 필수적"이라며 "우리나라의 현실인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 탄소감축 기술 조기 상용화 불가, 재생에너지 확대 한계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일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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