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알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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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마음공부.
"미운 사람한테 사랑을 보내는 기도가 힘이 있나요?" 있지.
"다음 생엔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겠죠?" 원하는 모습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사람의 겉모습은 진짜 문제가 아니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헬렌 켈러를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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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달콤한 위안인가? 거실에서 책을 읽는데 기림이 소리친다. 아빠, 저 아민이 좀 봐. 창밖을 내다본다. 개울가에서 아민이가 앙증맞은 파라솔로 어깨를 감싸고 강중강중 뛰며 놀고 있다. 나비처럼, 커다란 창포 노랑꽃에서 꿀을 빨아먹는다. 무지개 색깔 꽃뱀이 대가리 높이 들고 긴 혀로 아민이 옆구리를 간질인다. 옆구리에서 웃음이 퐁퐁 샘처럼 솟아나고 뱀은 그것을 날름거리며 삼킨다. 비단잉어가 물 위로 뛰어올라 아민이 입술에 긴 키스로 매달려 왈츠 풍 춤을 춘다. 까르르 웃음이 팔랑개비마냥 돌아간다. 작은 외할아버지가 카메라로 물고기와 개구리들을 찍으며 흘끗흘끗 조카손녀를 훔쳐본다. 잘 놀고 있는지 살피는 거다. 아민은 지금 개울에서 놀며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살그머니 꿈에서 나오는데 문득 이사야의 말이 허공에 깃발로 휘날린다. “너희가 부르기 전에 내가 대답하고 너희가 말하기 전에 내가 들을 터인즉,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놀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뜯고 뱀이 흙을 먹으리니 내 거룩한 산에 해코지가 없고 상처도 없으리라.” 이게 그저 예언자의 꿈이려니 했더니, 사람들이 아이처럼 동심(童心)으로 살아가는 그날이 온다는 얘기 아닌가? 맞다, 동심에는 사람이 꿀을 빨고 뱀이 옆구리를 간질이고 잉어가 입술에 매달려 키스하며 춤추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아아, 동심이 천국이다. 거기에 무슨 해코지가 있고 상처는 또 어떻게 있을 것인가? 짧지만 참 예쁜 꿈이다.
7학년 마음공부. “미운 사람한테 사랑을 보내는 기도가 힘이 있나요?” 있지. 있고말고. 하지만 그게 그렇다는 걸 알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어. 할아버지가 해보니까 정말 힘이 있더라. “지구 온난화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다. 그건 할아버지 같은 늙은이한테 묻지 말고 너희들이 고민해야 할 거다. 우리는 문제를 만든 세대라서 답이 없어. 이건 너희 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야.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어떻게든지 쓰레기 만들지 않고 물건 아껴 쓰고 좀 더 검소하게 사는 게 전부구나. 미안하다. “오늘 하루를 뿌듯하고 만족스럽게 사는 게 좋을까요? 부족함을 느끼고 아쉬워하며 사는 게 좋을까요?” 경우에 따라서 둘 다 필요하지 않겠니? 다만 지나간 일을 후회하느라고 오늘 할 일을 망치는 어리석은 잘못은 피해야겠지. “다음 생엔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겠죠?” 원하는 모습이 뭔지는 모르겠다만 사람의 겉모습은 진짜 문제가 아니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헬렌 켈러를 보렴. 사람에게 중요한 건 삶의 모습인데 그거야 이번 생에 얼마든지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여기는 이른바 천당이다. 사람들이 예수의 팔복(八福)을 정말 받았는지, 그것을 알아보고 판정하는 것이 엠플로이(employe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천사들의 역할이다. 그 판정의 결과로 무엇이 어찌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들이 척 보아서 이 사람은 합격 저 사람은 불합격이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몇이 가짜 엠플로이들이다.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는 듯, 활개치고 다니면서 이 사람 저 사람 판정한다. 갑자기 대학 총장이라는 뚱보가 나타나 사람들을 여기 앉아라, 저기 앉아라, 명령하고 사람들은 무슨 착한 양이나 된 것처럼 고분고분 걸상을 들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도 가짜 총장이다. 망할! 이게 무슨 천당이냐? 소리 없이 소리치다가 꿈에서 나온다. 어김없이 누가 한마디 한다. 그러니까 천당이지! 가짜가 있거나 말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롭지 않더냐?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어 하나는 잡고 하나는 버리니까 지옥인 거다, 이 무식한 것아! 가짜 없는 진짜가 어디 있고 진짜 없는 가짜가 어디 있느냐? 빛과 나무와 나무그늘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거기가 바로 거기인 줄을 아직도 모르느냐? ㅉㅉㅉ…
#성일이 웬 쪽지를 손에 들고, 자기는 아버지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라고 온 것이 겨우 구겨진 쪽지 한 장이라며 화를 낸다. 쪽지도 그냥 쪽지가 아니라 신문인지 잡지인지에서 찢어낸 종잇장이다. 거기 연필로 쓴 한 줄 사연을 읽어보니 이렇다. “나도 잘 있다, 아직은…” 성일에게, 무턱대고 화를 낼 게 아니라고, 실은 당신 아버지가 강도들에게 납치당해서 끌려가며 급히 쓴 거라고, 아들이 걱정할까봐 사실대로 적지 않고 아직은 무사하다는 걸 알린 거라고, 그러니 화를 낼 게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라고, 속삭여 말해주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왜 스승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는지 알겠다. 진상(眞相)을 모르면서 겉모양만 가지고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하지 말라는 거다. 대상이 무엇이든 인간은 그 전체를 모른다. 소크라테스 말대로, 인간은 알 수 있는 게 없다.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하나 알 수 있을 뿐. 그동안 뭘 안다고 착각하며 산 세월이 참으로 길었구나! “기도는 ‘난 모른다.’고 말하는 거다. 현실을 이해하는 대신 사랑하는 거다.”(리처드 로어).
목포 오가며 책 한 권 감명 깊게 읽는다. 스물아홉에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에티 힐레숨의 일기와 편지를 해설한 책이다. 하느님의 작품은 얼마나 아프고 아름다운 것인지! 예배 마치고 돌아오는 길로 학교에서 3시 예배.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 이런 사건 저런 상황이 겹치는 그야말로 우여곡절 끝에, “하나인 ‘그렇다’가 무수한 ‘아니다’를 승(勝)한다.”는 이집트 산술(算術)에 도달한다. 과정은 흐릿해지고 결론만 빛난다. 마치 이것 하나를 위하여, 또는 이것 하나 안에, 모든 것이 있었다는 듯, 꿈의 줄거리들이 홀연 사라져 흔적도 없다. ‘나’라는 이 한 물건이야말로 모든 ‘나 아닌 것들’의 총합 아닌가? 무수한 ‘나 아닌 것’들을 하나인 ‘나’가 승(勝)한다. 온갖 ‘아니다’들이 지워지는 그 자리에 하나인 ‘그렇다’가 홀로 빛난다. 불용구진(不用求眞)이니 유수식견(唯須息見)하라, 참을 구할 것 없으니 다만 견해를 쉬어라. 단막증애(但莫憎愛)면 통연명백(洞然明白)하리라, 싫어하고 좋아하기만 그치면 모든 것이 하나로 명백하리라. 온갖 모양의 무수한 ‘나’들이 죽어야 하나인 ‘나’로 살아난다는 스승님 말씀이 이것인가? 좋다, 이건 좋으니까 잡고 저건 싫으니까 뿌리치고, 이러는 삶의 버릇을 몸에서 지워보자. 할 수 있는 데까지 만이라도! 아니, 그러지도 말자. 누가 누구를 무슨 수로 지운단 말인가? 그냥 무위(無爲)!
8, 9학년 마음공부. “말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건 저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 말에 속상해하면 나를 잃는 것이다, 내가 누구보다 중요하다, 주문을 외어보지만 휘둘리고 또 휘둘리고 하네요. 그래도 연습해야겠죠?” 잘하고 있구나. 그래, 그래도 연습을 계속하는 것, 그게 사람 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 못지않게 중요해. “그래도 속이 상하면 어떻게 해요?” 누구 네 말을 들어줄 사람 있나 찾아보렴. 그럴만한 사람이 안 보이면 나무나 바위도 좋아, 개도 좋고. 아무튼 찾아봐, 네 속을 털어놓아도 비밀이 새거나 야단치거나 하지 않을 누군가를. 그에게 모두 털어놓아라. “싸운 일이 있는데 먼저 사과를 해야겠죠?” 아무렴! 그걸 말이라고 하니? 다만 사과할 때는 상대방이 어떻게 나와도 상관없을 만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 상대가 사과를 안 받아줄 수도 있거든. “할아버지는 어떤 왕이 백성을 제일 잘 다스린다고 생각하세요?” 옛 어른이 이런 말을 했더라. 가장 잘 다스리는 왕은 안 다스리는 왕이고, 그 다음은 덕(德)으로 다스리고, 그 다음은 법으로 다스리고, 맨 아래는 힘으로 다스리는데 백성이 무서워하면서 욕을 한다고. “소위 대안학교가 처음에는 좋은 정신과 철학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대교체가 되면 대부분 달라지지요. 그렇다면 대안학교는 일시적인 교육기관 아닌가요?” 대안학교가 뭔지 모르겠다만 일시적인 교육기관인 건 사실이다. 세상 모든 것이 일시적인 거니까. 항구적인 건 없는 거야. 달라지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바뀌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질되지 않아야 하는 건 있어. 저 나무를 보아라. 작년에도 팽나무 올해도 팽나무 십년 뒤에도 팽나무 아니겠니? 겉모습은 날마다 바뀌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 거야. 학교도 그래. 네 말대로 시작할 때의 정신과 철학, 그건 변질되지 않아야겠지. 그래서 처음 가졌던 마음을 잊지 말라는 거다. 학교뿐만이 아니고 사람도 마땅히 그래야 해.
글 아무개 이현주 목사/순천사랑어린학교 마음공부 선생님.
***이 시리저는 전남 순천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위 글은 이현주 목사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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