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시다 정부 출범, 계파 분배 기반한 '무늬만 쇄신' 내각.."이달 31일 총선"

박은하 기자 2021. 10. 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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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자민당 총재가 4일 일본의 제100대 총리로 취임했다. 기시다 정부의 초대 내각은 20명 중 13명이 새 얼굴로 채워졌다. 물갈이를 통해 쇄신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지만 이면을 보면 당내 주요 파벌에 자리를 나눠주며 안정을 꾀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기시다 신임 일본 총리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극우 세력의 주장을 반복해 온 인물들이 내각 요직에 기용돼 한·일관계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오는 31일 중의원 선거를 치를 계획을 밝혔다. 자민당 내 온건파 성향으로 분류되며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강조했지만 강경 보수 파벌에 둘러싸인 그가 총선 승리를 위해 취임 한 달간 어떤 색깔을 드러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 중의원과 참의원은 이날 오후 임시국회를 열어 기시다 총재를 새 총리로 선출했다. 기시다 총리는 총리관저에서 연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오는 14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31일 총선을 실시하겠다”면서 “선거기간 중에도 코로나19와 경제 양면에 대한 대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로 경색된 북·일 관계에 대해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직접 마주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반성하면서 납치 문제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왕으로부터 임명받는 친임식과 각료 인증식을 거쳐 새 내각도 발족했다. 20명의 각료 중 이번에 첫 입각한 인물은 13명으로 전체의 65%를 차지한다. 지난해 9월 스가 내각에서는 5명, 2012년 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10명이 첫 입각했다. 일본에서는 통상 5선 이상 의원들이 장관을 맡는데 이번에는 3선 의원도 3명이나 포함됐다. 아사히신문은 “쇄신 이미지를 내세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새 얼굴의 숫자는 늘었지만 젊은 내각이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기시다 내각의 평균 연령은 만 61.8세로 스가 정부 초대 내각(만 60.4세)보다 높아졌다. 내각 구성원 21명 중 세습 정치인은 기시다 총리 본인을 포함해 7명(33%)에 달한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유임됐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변화보다는 안정을 꾀하려는 인사로 평가된다. 더불어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로 악화된 한·일관계의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밖에 글로벌 무역분쟁과 첨단산업 기술경쟁을 염두에 두고 경제안보상이 신설된 것도 특징이다. 여성은 노다 세이코 저출생상 등 3명이 포함됐다.

요직에는 자민당 내 주요 파벌 소속 인사들이 배치됐다. 유임된 기시 방위상은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이다. 아베 전 총리의 복심인 하기우다 고이치는 문부과학상에서 경제산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권의 핵심인 관방장관에는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최대파벌 호소다파 소속 마쓰노 히로카즈 전 문부과학상이 임명됐다. 재무상에 임명된 스즈키 순이치는 아소파 소속이다. 연립 공명당 몫으로는 사이토 데쓰오 국토교통상이 임명됐다.

한·일 역사 문제와 관련해 극우세력을 대변해온 인사들도 곳곳에 포진했다. 마쓰노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다’는 취지의 미국 지역신문 의견광고에 이름을 올렸고, 하기우다 경제산업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복해왔다. 기시다 총리 등 내각 구성원 21명 가운데 14명이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를 지원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이라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전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내세우고 있지만 내각 인사에서는 그 구체적 실현방식이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당초 기시다 총리는 다음달 7일이나 14일 총선 투개표를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 일정을 1~2주 앞당겼다. 새 내각 출범 초기에 지지율이 오르는 ‘축하장세’를 활용해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기시다 총리는 “중의원 임기가 오는 21일까지라 공백을 가능한 한 짧게 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뜻을 배경으로 과감히 코로나19 대책과 경제 대책을 실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기시다 총리는 의회의 재지명을 통해 101대 총리로 연임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8년 동안 이어진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완화와 재정풀기가 핵심이었던 아베노믹스로 실업률이 감소하고 기업 실적이 개선됐으나 2%대 성장에는 실패했다. 두 차례 걸친 소비세 인상이 중간중간 발목을 잡았고, 비정규직 중심으로 고용이 늘면서 노동소득 분배율은 개선되지 못했다.

경제평론가 다치바나 아키라가 지난 7월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무리게이 사회>는 현재 일본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무리게이는 공략불가능한 게임이라는 뜻으로 20년 동안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과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인해 젊은층이 인생을 무리게이로 받아들있다는 내용이다. 기시다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임금인상을 통한 분배 개선과 금융소득세 부과를 통한 양극화 해소를 강조했다. 입헌민주당을 포함한 야당 4당은 최저임금 인상과 공평한 세제 마련, 개헌 반대와 탈원전 등에 공동 정책공약을 내걸고 자민당에 맞설 예정이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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