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007 노 타임 투 다이', 순애보 남기고..대니얼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변함없는 사랑 보여줘
영국 정보기관 MI6를 은퇴하고 연인 매들린(레아 세두)과 함께 이탈리아 남부의 마테라로 여행을 떠난 본드를 그리며 영화는 시작한다. 지금 연인과의 삶이 행복하지만 오래전 숨진 옛 연인 베스퍼(에바 그린)의 기억이 마음 한구석에서 없어지지 않아 그는 괴로워한다.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베스퍼의 묘지를 찾는데 이때 국제범죄 단체 스펙터 조직원들이 습격해온다.
왕년의 솜씨를 보여주며 어렵지 않게 탈출한 본드는 매들린과 결별한다. 스펙터 간부가 아버지인 데다 당일 자신의 행적을 유일하게 알고 있던 그녀를 배신자로 의심해서다.
이후 본드는 자메이카에 묻혀 조용히 살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취를 감춘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옛 동료인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펠릭스(제프리 라이트)가 찾아와 복귀를 요청한다. 스펙터가 탈취한 MI6의 비밀 생화학무기를 회수하고 담당 연구원을 잡아와 달라는 것. 결국 본드는 주먹과 총알이 오가고 피가 튀는 잔인한 세계로 돌아온다. 작전 수행 과정에서 매들린과 재회하고, 또 새로운 악당 사핀(라미 말렉) 일당과 맞부딪치며 본드는 깨닫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말이다.
강한 남자가 너무나도 부드럽게 진심을 고백하는 모습은 생경하면서도 매력적이다. 관객들은 불가항력적으로 순애보에 매혹된다.
코드명 '007'을 계승했으며, 본드와는 갈등하고 또 협력하며 같은 표적을 쫓는 MI6 요원 노미(러샤나 린치)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특히 그간 007이 쭉 백인 남성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이번엔 흑인 여성인 점이 이채롭다. 갈수록 문화예술계에서 위상이 높아지는 '정치적 올바름' 풍조의 반영이다. 007 시리즈 차기작에서 제임스 본드가 누구일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이대로라면 여성, 흑인 등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크레이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본드는 남성이 연기하는 게 어울린다는 개인적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007 시리즈 하면 역시 액션과 로케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전조등 자리에서 기관총과 연막탄이 튀어나오는 방탄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 비행기인 동시에 잠수정인 '글라이더' 등 각종 첨단 장비들은 관객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또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마테라를 비롯해 노르웨이, 자메이카 등 여러 곳을 오가며 촬영한 아름다운 풍광은 여행 욕구를 자극한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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