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식민지배 미화' 논란에 발끈한 알제리 "프랑스군 우리 영공 날지 마"

김윤나영 기자 2021. 10. 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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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17년 12월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알제|AP연합뉴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가 3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식민지배 미화 주장에 반발해 프랑스 군용기의 영공 통과를 거부했다. 알제리는 “프랑스 대통령이 알제리의 독립투사를 모욕했다”고 비판했다.

알제리 정부는 이날부터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 지역을 오가던 프랑스 군용기의 영공 통과를 불허한다고 국영 APS 통신이 보도했다. 파스칼 이안니 프랑스군 대변인도 “알제리가 사전 통고 없이 갑자기 군용기 두 대의 영공 통과를 거부했다. 한 대는 샤헬발 프랑스행이고 다른 한 대는 프랑스발 사헬행이었다”고 밝혔다. 알제리는 전날 프랑스 파리 주재 자국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알제리 매체 엘와탄은 “양국 간 위기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양국 갈등은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파리 엘리제궁에서 1954~1962년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 편에서 싸운 알제리인들의 후손들을 불러모아 놓고 한 발언에서 비롯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알제리인들을 전쟁에 동원한 데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알제리 정부를 향해서는 “알제리가 공식화한 역사는 사실이 아닌 프랑스에 대한 증오에 기반한다”, “프랑스 식민지 이전에 알제리가 국가로서 존재했나”라고 날을 세웠다. 프랑스가 1830년 식민지로 지배하기 전까지 알제리는 주권국가가 아니라 오스만제국의 섭정 국가였다고 꼬집은 것이다. 프랑스는 알제리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줄여오던 터였다.

그러자 압델마드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프랑스 식민침략에 저항한 독립투사 563만명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공격”이라면서 “용납할 수 없는 내정 간섭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반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내년 4월 대통령선거 재선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현지 매체 알제리 24시간은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에서 극우파의 표를 얻기 위해 프랑스의 식민 범죄 인정을 거부하고 알제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편에서 싸운 알제리인들에게 사과함으로써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대선 주자 마린 르펜과 차별화했지만,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보상은 거부하고 과거사 논쟁에 끼어들면서 국내 보수 지지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와 사이가 나빠진다면 프랑스도 장기적으로는 손해를 보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는 가스·석유 수입, 난민 문제, 안보 등에서 알제리를 필요로 한다. 당장 알제리의 영공 차단으로 사헬 지역에서 프랑스판 ‘테러와의 전쟁’인 바르칸 작전을 펼쳐오던 마크롱 대통령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프랑스는 알제리 남쪽의 사헬 지역에 약 5000명의 군대를 두고 말리와 니제르 등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와 싸우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알제리는 아프리카 난민을 막는 문지기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으로 가려고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서 온 난민 수천명을 니제르로 강제 추방했다. 또 알제리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는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거점이기도 하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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