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나와 노숙생활..20년 뒤 대권주자가 그를 찾았다

정혜민 기자 입력 2021. 10.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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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자들⑨]보육원 출신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편집자주]중독과 상처, 고통에서 회복돼 다시 출발한 사람들의 드라마, '회복자들'을 만났습니다. 삶의 끝에 내몰린 절망을 희망으로 이겨낸 우리 이웃들입니다.

보호종료청년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정서적 자립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의 김성민 대표는 보호종료청년의 자립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2021.9.1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김성민(36) 브라더스키퍼 대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보육원을 나와야 했다. 2월의 엄동설한이었다. 경북 안동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강변버스터미널에서 6개월간 노숙생활을 했다.

김 대표는 "신문지를 이불 삼고 박스를 담요 삼아 지내며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을 찾아 먹었다"고 회상했다. 먹고 재워줄 곳이 절실했다. 나름 깨끗한 옷을 주워 입고 식당으로 가서 무작정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능력을 인정 받아 주방 일까지 했지만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주변의 눈빛이 달라졌다. 사장은 "왜 거짓말했냐"고 다그쳤고 동료들은 김 대표를 잠재적 도둑으로 몰았다.

약 20년 뒤 김 대표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유명 인사가 됐다. 올해 2월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비공개 일정으로 김 대표를 만나 화제를 모았다.

그가 설립한 브라더스키퍼는 보육원 출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경기 안양의 브라더스키퍼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회복이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보육원 출신들, 미흡한 제도에 가난·범죄" -보육원에는 언제 들어가셨나요. "저는 1988년쯤 안동초등학교 앞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당시 추정나이 세살이었죠. 지금 사용하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보육원에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식 직후까지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보육원 출신 청년들은 보호종료 후 주로 어떤 어려움을 겪나요. "실제로 많은 보육원 출신 청년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성매매를 합니다. 기댈 곳은 없는데 긴급한 생활비나 병원비가 필요할 때 사채 또는 사기에 연루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통 어른이 된다고 기대하잖아요. 저희에겐 그런 희망이 없었어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보호종료청년의 40%가 기초생활수급 경험이 있으며 52%만 대학에 진학한다.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123만원에 불과했다.

-대표님은 보호종료 직후 어떻게 지냈나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자 보육원에서 나가라는 압박을 줬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웠습니다. 서울로 올라온 그길로 노숙생활을 했지요. 그게 사회생활의 첫 시작이었어요. 보육원처럼 먹여주고 재워줄 곳이 필요했습니다. 나름 깨끗한 옷을 주워 입고 막 문을 연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서 일 좀 시켜달라고 했죠. 그렇게 제 인생의 첫 직장을 구했습니다."

보육원에선 잘해도 혼났고 못해도 혼났지만 식당에서는 잘하는 만큼 보상을 받았다. 그게 너무 좋았단다. 김 대표는 출신을 의식해 더 성실하고 깔끔하게 보이려 노력했다. 속옷과 양말도 다려 입을 정도였다.

그러나 보육원 출신이라는 게 알려지자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부모가 없어서 저렇다"는 공격을 받았다.

-보육원 출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었네요. "저를 '한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저의 출신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어요. 학창시절에도 그런 경험을 했고요. 고아라는 이유로 물건이 사라지거나 사건·사고가 있으면 가장 먼저 범인으로 지목되죠. 12년 동안 부정당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주변에 몰려든 보육원 아이들

김 대표는 시종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2007년 한국에 있는 미국 비영리 단체에서 근무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경험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아이들은 보육원 출신인 김 대표가 당당히 일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비영리 단체 활동은 어땠나요. "미국인들과 함께 보육원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을 때나 잠잘 때 아이들이 '멋있다'며 제 주변에만 몰려드는 거예요. 사실 더 잘생긴 건 미국인들인데요. 아이들은 제가 보육원 출신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미국인들과 함께 온 제가 아이들 눈에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죠. 아이들도 보육원을 나간 선배들이 잘 지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거든요."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지원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1.7.13/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당시 아이들이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이 '숨겨야 할 과거'가 아니라 '용기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존감이 많이 회복됐습니다. 어렸을 때 비워졌던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더니 자신의 상처 또한 회복되는 경험이었다. 그는 "부모님의 빈 자리를 크게 느꼈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아이들에게 가족이 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비영리단체에서 전국 보육원 아이들을 후원했지만 곧 한계에 부딪혔다. 후원 받을 때는 문제 없었지만 후원이 끊기는 순간 아이들의 자립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아는 사업가들을 찾아다니며 보육원 출신 청년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대부분 1~2주 만에 일을 관뒀다. 청년들은 관심을 '동정'으로, 지적을 '차별'로 받아들였다. 김 대표는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부정적인 경험을 너무 많이 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경회사에 취업한 청년은 오랫동안 일했다. 그에게 이유를 물으니 "매일 식물을 대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는 답이 돌아왔다. 해당 기업의 도움을 받아 보호종료청년들과 식물 관련 사업을 하기로 했다.

보육원 출신 청년 중 상당수가 농업고등학교를 다녔다. 미세먼지가 한창 사회 문제일 때라 사업성도 있었다. 그렇게 2018년 브라더스키퍼를 설립했다.

◇"어떻게 아동을 '보호종료' 하나"

-브라더스키퍼는 어떤 곳인가요. "보호종료청년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한 사회적 기업입니다. 현재 직원 10명 중 7명이 보호종료청년입니다. 공간에 식물을 채우는 식물 인테리어 설치 및 유지 관리가 주요 사업입니다. 보호종료청년의 권익을 높이고 편견은 낮추기 위한 활동도 함께 합니다."

올해 초엔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후보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브라더스키퍼를 찾아 김 대표와 보호종료청년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연간 약 3000명의 아동이 만 18세가 돼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그룹홈), 위탁가정을 나와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행정적으로는 주로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를 쓰지만 김 대표는 '보호종료청년'이라고 바꿔 부른다.

김 대표는 "어떻게 아동을 보호종료하겠나"라며 "그만큼 보호종료청년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보호종료청년을 위한 다양한 자립 지원책들을 내놨는데요. 관련해 조언할 게 있을까요. "보호종료청년 관련 제도가 이제야 막 논의 및 시도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정부도 아직 시도하는 단계입니다. 더 좋은 자립 제도를 만들려면 우선 다양한 시도가 있어야 합니다."

-대표님에게 회복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잘못해 보육원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자꾸만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회복의 핵심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원래 모습을 찾아주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고아가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것을 먼저 경험했을 뿐입니다."

보호종료청소년에게 안정적 일자리와 정서적 자립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의 김성민 대표는 부모님이 보고 싶어 경찰에 유전자를 등록했다고 한다. 부모님도 유전자를 등록하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2021.9.13/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부모님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저는 결혼식 때 계속 울었어요. 아내 부모님을 보니 아내와 너무 닮았더라고요. '나는 누구를 닮았을까, 부모님이 계셨다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보고 싶습니다. 경찰서에 제 유전자 정보를 등록했으니 부모님 쪽에서만 등록하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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