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선거 철마다 등장하는 역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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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경선 후보 TV 토론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손바닥에 ‘王’(왕) 자가 그려진 것을 두고 네티즌들의 공방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정상이 아니다” “21세기에 웬 미신”이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다른 쪽에선 “국민을 왕처럼 정중히 모신다는 뜻” “단순한 이모티콘에 무속 주술이라는 허깨비를 씌운다”고 두둔했다.
▶큰 선거가 다가오면 정가(政街)에선 미신과 관련된 온갖 소문이 떠돈다. 풍수가나 호사가들 입에서 나오는 대표적 메뉴가 조상 묘지 이장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 신안의 아버지 묘와 포천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던 어머니 묘를 용인으로 옮겨 합장한 후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세 차례 대권 도전 실패 끝에 마지막 수단으로 묘지를 이장했는데 이것이 적중했다고 일부 풍수가는 말한다. 김종필, 이회창, 한화갑, 김덕룡, 이인제씨 등의 조상 묘 이장도 대망론과 무관치 않다는 말이 많았다.
▶무속인을 전속으로 ‘고용’해 정치활동 일거수일투족을 의존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의원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동쪽으로 가라는 무속인의 말을 듣고 대문이 없는 동쪽 벽을 사다리를 타고 넘어갔다는 일화가 있다. 해외출장 날인데 “비행기를 타면 안된다”는 점쟁이의 만류에 일정을 연기한 사람도 있다. 풍수가를 데려와 사무실 문이나 책상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집권당 사무총장이 점을 보고 선거일을 잡은 시절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도 이따금 미신이 등장한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 후 트라우마에 시달린 낸시 여사는 남편의 일정과 안전을 점성술사에게 의지했고, 그 점성술사가 백악관의 막후 실력자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일 밤 호텔 파티 계획을 막판에 갑자기 취소하고 측근 3인방과 함께 개표 방송을 지켜봤는데, 뉴욕타임스는 “그가 미신을 믿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 선거 당일 똑같은 3인방만 곁에 뒀다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의 손바닥 ‘王’을 공격한 홍준표 경선 후보도 ‘레드 홍’ ‘레드 준표’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빨간색을 애용했다. 마스크, 넥타이는 물론이고 속옷까지 붉은 색을 입는데, 역술인의 충고 때문이라는 소문에 시달렸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운’에 미래를 맡겨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AI 시대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 선택 과정에 미신이나 역술이 개입한다는 것은 개운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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