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실리콘밸리서 해킹당했다

김성민 실리콘밸리 특파원 2021. 10. 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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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이메일을 클릭했다가 피싱을 당했다. 회사에서 보낸 보안 경고로 위장한 이메일에 깜빡 속은 것이다. 회사에서는 “실시간으로 해커가 현재 키보드로 입력되는 내용을 훔쳐갈 수 있다”고 했다. 사용자의 정보를 빼가는 스파이웨어다. 새로 컴퓨터를 마련하고 스마트폰을 초기화하느라 며칠 고생했다. 첨단 테크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이메일 피싱에 속았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한 지인은 최근 선글라스를 낀 사람을 보면 일단 의심한다고 했다. 최근 페이스북이 레이밴과 협업해 스마트글라스를 내놨는데, 이 스마트글라스에 달린 카메라로 남몰래 도촬(도둑촬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 얼굴에 대단한 초상권이 있는 건 아니지만 허락 없이 찍어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스파이가 넘치는 세상이다. 평범한 사람의 개인정보를 노리는 스파이웨어와 남몰래 동영상을 찍고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IT 기기들이 넘쳐난다. 지난 28일(현지시각) 아마존이 출시한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는 벌써 사생활 침해 가능성과 보안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 로봇은 유리 깨지는 소리 등이 나면 자동으로 집 안을 순찰하고 집에 있는 모든 사람의 행동을 추적한다. 또 인공지능 심화학습을 통해 사용자의 특성을 관찰하고 모든 데이터를 저장한다. 해커가 이 로봇을 뚫으면 사용자가 집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언제 주기적으로 집을 비우는 지 등이 통째로 넘어갈 수 있다. 아마존의 한 직원은 미 IT 매체 바이스에 “이는 사생활을 편의와 맞바꾼 것”이라며 “개인정보 측면에서 악몽”이라고 했다.

“각종 비밀번호를 수시로 바꿔라”는 사이버 보안 지침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를 실제로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내 정보를 털어서 뭘 하겠어”라는 무사안일주의도 한몫한다. 사이버 보안업체 노턴라이프락에 따르면 스마트폰 안드로이드 앱 장터에는 달력, 계산기로 위장한 스파이웨어 800여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앱들은 사용자 몰래 위치 추적을 하고, 사진과 메시지를 빼가고, 전화 통화를 엿듣는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삼성전자 등 테크 기업들은 보안 기능을 강화하지만 역부족이다. 해커들은 점점 더 날카로운 창으로 찔러온다. 뉴욕타임스는 “스파이웨어를 물리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없다”고 했다. 결국 개인정보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개인이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수밖에 없다. IT 기기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업에 무한 책임을 지우는 대책도 필요하다. 스파이에 감시당하는 미래가 싫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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