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장애인권리법, 새 술은 새 부대에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2021. 10.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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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장애인복지법이 만들어진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동안 60번도 넘게 개정이 있었던 이 법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9년 장애등급제가 형식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장애인의 온전한 권리보장과 사회참여 실현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2018년 발표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이루어지는 포용사회’라는 목적 아래 5대 분야 22개 중점과제 및 69개 세부 정책목표를 담고 있다. 종합계획의 핵심은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지원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이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 복지체계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를 이어 지난 8월,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는 ‘탈시설 지원 로드맵’과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법이 아니다. 2010년 시작된 장애등급제 폐지 운동을 계기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은 장애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래서 지난 20대 국회에서 총 3건의 장애인권리보장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논의도 제대로 못해본 채 입법기 만료로 모두 폐기되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정부 출범 이후 이를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킨 바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왜 필요한가. 기존의 의료적 관점에서 보호와 재활에 중점을 두었던 장애인복지법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엄한 삶을 담아내기에는 이미 턱없이 작은 그릇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내용 중심으로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 및 정책 기본이념을 제시하고, 장애인의 권리 주체성과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성 강화를 명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장애 출현율은 24.5%지만, 우리나라는 5.4%에 불과하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 등록 제도가 가지는 한계가 숫자로도 드러나고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지금의 제한적인 장애인 등록 제도를 개편 또는 폐지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장애인이 탈시설을 선택하고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으려면 그에 걸맞은 예산과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을 통하여 장애인 활동지원을 포함한 장애인의 욕구와 수요에 맞는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강화는 이 법이 담고 있는 핵심적인 권리지원의 방법이다.

제정법의 통과도 중요하지만, 결국 법이 실행되는 과정은 사람이 만들어간다. 그렇기에 법의 통과 전부터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다. 장애인복지법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하면서도 새로운 예산, 공적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체적으로 구상하지 않고 기존의 예산이나 서비스 유형, 지원체계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재구조화하는 것에 그친다면, 사실상 법 이름만 바뀐 채 실제 장애인의 삶은 그대로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런 방식의 개편은 결국 정해져 있는 서비스와 한정된 예산 안에서만 공적 서비스와 급여량을 제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한된 서비스 안에서 통제받는 시스템을 재확인하는 정도라면 법을 제정하는 의미는 거의 없게 된다.

장애를 가진 시민은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제정을 통해 제대로 된 개인별 맞춤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장애인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제공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염원이 이루어지려면 장애인권리보장법에 근거하여 충분한 재원이 확보되고, 서비스별로 쪼개져 있는 칸막이 행정이 없어지며, 개인 서비스를 조정 지원할 수 있는 전담인력이 배치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단일한 공적 전달체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장애인이 완전한 사회참여와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목적이 현실이 되도록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조속한 제정을 기대한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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