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누가 '도루묵'의 이름을 지었나

엄민용 기자 2021. 10.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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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을 전어’가 유명하지만, 가을을 대표하는 생선으로 도루묵도 빼놓을 수 없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월부터 도루묵은 제철을 맞는다. 알배기가 먼저 떠오르는 도루묵의 산란기는 11~12월이지만, 이때의 도루묵알은 좀 질긴 식감을 준다. 그에 비해 시월 도루묵의 알은 한결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맛을 낸다.

‘도루묵’은 이름과 관련해 재미난 유래담이 많은 생선이다. 그중 하나가 조선 제14대 왕 선조와의 인연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몽진(蒙塵)을 가다 ‘묵’이라는 생선을 먹게 됐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동안 배고팠다가 먹었으니 당연히 맛있었을 터. 이에 선조가 “이 맛있는 물고기에게 ‘묵’이란 촌스러운 이름은 격에 맞지 않는다”며 그 자리에서 ‘은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궁궐에 돌아와 옛날을 생각하며 다시 ‘은어’를 찾았을 때는 아주 맛없게 느껴졌다. 그러자 선조는 상을 물리며 “도로 묵이라 부르라”고 일렀다. 그 ‘도로 묵’이 ‘도루묵’으로 바뀌었다는 게 가장 널리 알려진 유래담이다.

그러나 이 유래담은 신빙성이 거의 없다. 우선 도루묵은 한류성 어종으로, 우리나라 동해와 러시아의 오호츠크해 근처에 주로 서식한다. 이 때문에 강원도 사람들은 예부터 “여름에 도루묵이 많이 잡히면 흉년이 든다”고들 얘기해왔다. 한류성 어종이 여름에 많이 잡히면 그만큼 냉해의 우려도 커진다는 소리다.

아울러 도루묵은 예부터 사람들이 너나없이 즐겨 먹던 생선이 아니다. 어부들이 힘들게 그물을 끌어올렸는데 도루묵만 잔뜩 들어 있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푸념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 도루묵을 서울을 떠나 평양을 거쳐 의주로 향한 선조가 몽진길에서 맛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선조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선조실록>에도 그런 얘기는 실려 있지 않다.

국어학계에서는 ‘도루묵’을 ‘돌묵’이 변한 말로 보기도 한다. ‘돌사과’와 ‘돌배’ 따위에서 보듯이 우리말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또는 ‘야생으로 자라는’을 뜻할 때 ‘돌’을 붙이곤 한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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