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거와 좌파 바람

박영환 국제부장 2021. 10.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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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지 벌써 1년6개월이 넘었다. ‘위드 코로나’로 일상을 회복하려는 나라들도 하나둘 이어지고 있지만 전염병의 공포와 봉쇄로 인한 경제난은 여전하다. 팬데믹이 이어지면서 사회적 균열은 점점 더 심각해졌고 경제적 불평등 문제는 정치의 최대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불안과 불평등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세계의 시민들은 어떤 정치세력을 선호할까.

박영환 국제부장

지난달 26일 치러진 독일 총선을 이런 관점에서 주목해보자. 독일 선거에서는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이 중도우파 성향의 기민·기사당 연합을 꺾고 2005년 이후 16년 만에 정권교체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로써 독일도 중도좌파 정당이 연정을 이끌고 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와 같은 그룹에 끼게 됐다. 앞서 13일 노르웨이 총선에서도 노동당이 이끄는 중도좌파 진영이 승리하며 2013년 이후 8년간 이어온 중도우파 집권을 끝냈다. 이에 따라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에 이어 노르웨이까지 북유럽 4개국 모두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독일 총선의 결과만으로 유럽 중도좌파의 부활을 선언하기는 이르다. 아직은 조심스럽고 불균질한 좌파의 귀환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아이슬란드 총선에서는 좌우연정을 구성하는 정당들의 의석이 늘었지만 연정을 주도하는 좌파녹색운동은 의석을 잃었다. 독일 선거에서도 사민당은 25.7%를 얻어 24.1%의 기민·기사당을 겨우 1.6%포인트 앞섰다. 한때 40%가 넘는 독일 시민들의 지지를 받던 그 사민당은 이제 없다.

독일 총선이 유럽 좌파 진영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 것은 분명하다.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더 큰 정부, 복지 지출 확대, 사회적 단결을 강조하는 좌파 정당들이 더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음이 확인됐다. 우파들의 무기였던 이민 문제나 법과 질서는 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이슈가 못됐다. 사회적 불평등 문제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올라프 숄츠 사민당 총리 후보는 플랫폼노동자 등 필수 노동자들의 임금과 작업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노르웨이 노동당의 선거 구호는 ‘이제 서민의 차례다’였다. 존중과 존엄이란 단어, 평범한 직업과 삶에 초점 맞추기는 소득뿐 아니라 지위의 재분배를 강조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좌파 정치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진단했다.

팬데믹 시대 좌파 바람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중남미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페드로 카스티요 좌파 자유페루당 후보가 당선된 지난 6월 페루 대선은 상징적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경제 불황과 사회적 불평등 문제로 오랫동안 시름해왔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열악한 복지 시스템과 공공보건 의료 체계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고조됐다. 카스티요는 “불평등은 끝났다”며 경제적 평등을 약속했다.

4만여표 차이에 불과했지만 카스티요의 승리는 2000년대 중남미를 휩쓸었던 ‘핑크 타이드(좌파 바람)’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미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쿠바, 멕시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이 좌파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지난 4월 에콰도르 대선에서는 금융인 출신 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예외적 사례도 있었던 만큼 핑크 타이드 역시 일관된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치의 트렌드를 보여줄 선거들이 기다리고 있다. 유럽에선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이 대표적이다. 현재 프랑스 대선전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 좌파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의 3파전 구도가 형성돼 있다. 마크롱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이었던 지난 6월 광역 지방선거에서 사회당은 선전한 반면 집권당의 성적은 저조했고 국민연합은 완패했다. 오는 11월 칠레 대선과 내년 5월 콜롬비아 대선까지 지켜보면 중남미 핑크 타이드 재연의 윤곽도 드러날 것이다.

한국도 내년 3월 대선을 치른다. 이번 대선이 팬데믹 시대 시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선거가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선거가 몇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소득과 지위의 재분배 같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진보 의제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장동 의혹, 고발 사주 의혹 등으로 역대 가장 지저분한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시민들 입장에서 좌파냐 우파냐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 팍팍해서 못살겠다’는 외침에 누가 화답하느냐가 중요하다.

박영환 국제부장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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