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백색의 얼굴
[경향신문]
자의식과 자의식이
비슷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의 키가 나를 훌쩍 넘어버리자
내 목소리의 색깔이 변하였다
듣고 싶지 않다고
늘 손에서 빠져나가던 그 아이 머리맡에
물방울처럼 달이 내려온다
터지지 않고 공중에 머물다
블라우스 속으로 몰래 들어와
하얗게 익는다
이재연(1963~)
“이 아인 항상 추웠어요.” 영화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인공 제임스 딘이 죽은 친구를 위해 한 말이다. 추운 건 날씨가 아니라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늘 외로웠다는 뜻이다. 신체의 성숙뿐 아니라 급속한 정신적 변화를 겪는 청소년기의 ‘이유 없는 반항’ 뒤에는 대화의 단절과 무시가 존재한다. 흔히 사춘기의 특징을 짜증과 허풍이라 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를 입에 달고 살지만,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방임보다 약간의 개입이 필요하다.
사춘기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과 ‘항상 네 편’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 세상에 내 편이 한 명만 있어도 ‘질풍과 노도’의 시기를 무사히 건널 수 있다. “내 목소리의 색깔이 변”하는 순간 아이는 저만치 멀어진다. 짜증도, 반항도 사춘기 아이들의 특권이다. “듣고 싶지 않다고/ 늘 손에서 빠져나”가도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백색은 수용이 아닌 반사하는 특성을 가진 색이다. 잘 튕겨나간다. 인내하는 동안 훌쩍 커버린 아이는 “몰래 들어와” 곁에 머문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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