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나의 출근길 동지에게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 회사가 서울 종각역 근처에 있어 청계천 자전거 도로를 애용한다.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서울 명소 청계천도, 복잡한 도심도 아닌,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이다. 멀리서 보면 출근길 자전거 무리에 속한 사람은 전부 비슷비슷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안에서 보면 정말 각양각색이다. 값비싼 로드바이크를 타고 빠르게 멀어져가는 운동 마니아도 있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필사적으로 페달을 밟는 정장 차림 아저씨도 있다. 나처럼 무겁디무거운 따릉이를 끌고 가는 사람들은 항상 만나지만 언제나 반갑다.
오늘은 누가 봐도 새것 같은 빨간 헬멧을 쓴 아저씨를 뒤따라갔다. 중고로 산 듯한 입문용 로드바이크를 타고 있었는데, 뭔가 폼이 어설퍼 자전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보였다. 아저씨는 자주 지쳐 속도를 늦췄고, 덕분에 우린 꽤 오랫동안 길동무가 될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우리는 그렇게 얼마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달렸다. 위험한 구간을 지날 땐 아저씨 등판을 따라가며 일말의 안정감을 느꼈다. 다리가 무거워 보일 땐 속으로 응원을 건넸으며, 너무 뒤처지면 묘한 경쟁심을 느끼며 한번 더 힘을 짜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출근은 혼자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번잡한 출근길엔 대화 없이 형성되는 고요한 유대가 있다. 각자 일터로 흩어지기 전, 우리는 잠시나마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크고 작은 에너지를 주고받는다. 그러면서도 서로 거리는 유지할 수 있어 다사다난한 인간관계의 피로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을 수 있다. 나는 앞선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또다시 일상을 이어갈 힘을 조금이나마 얻는다. 출근길 유대는 언제 끝날지 몰라 더욱더 애틋하다.
아마 다른 누군가는 내 등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내 뒷모습이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니 그저 페달에 힘을 실을 뿐이다. 출근길 동지에게 내 에너지가 무사히 전달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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