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차기 대통령, 기시다 日 총리와 ‘大화해’ 추진해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일본 시민사회를 긴장시킨 인물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이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보다 더 우측에서 정치 활동을 해왔다. “총리가 돼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겠다”고 공약한 그에 대한 우려가 동해(東海)를 넘어서 들려왔다. “다카이치 총리 탄생은 일본의 비극”이라고 말하는 일본 지식인도 여럿 있었다.
그는 ‘일본 첫 여성 총리’를 내세워 1차 투표에서 자민당 의원 382명 표 중 114표를 얻어 돌풍을 일으켰다. 여론조사 1위인 고노 다로(河野太郎) 행정개혁상보다 28표나 더 많았다. 일본의 한 소식통은 “만약 1주일만 더 늦게 총재 선거를 했다면 다카이치가 당선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일본 자민당의 우경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마무리했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이 당선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카이치 쇼크’가 보여주듯이 요즘 자민당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다. 우측으로만 폭주하는 자민당 기관차에서 파벌을 이끌며 한일 관계를 위해서 고민하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그는 맨 처음 거론된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인 기시다를 가장 잘 알고 자주 만난 이가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다. 2013년 취임 후 4년 3개월간 기시다 당시 외무상과 호흡을 맞추며 매년 6~7회 이상 만났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치 쇼타로 국가안보국장이 선발투수로 나왔던 위안부 문제에서 두 사람의 계투(繼投)로 합의문이 만들어졌다. 윤 전 장관은 “기시다는 일본 정계의 온건·합리적인 인물로 신뢰할 수 있다. 자민당 선거에서 한일 관계의 모멘텀이 만들어졌으니 적극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 정치의 파벌은 전통을 중시한다. 그가 이끄는 기시다파(46명)가 한국과의 우호 관계를 중시하는 ‘고치카이(宏池会)’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치카이는 한일 수교의 주춧돌을 놓은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의 명맥을 잇고 있다. 1992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처음으로 국회에서 사과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총리도 고치카이 소속이었다. 오랫동안 한국 의원들과 평화를 논의하며 총리 야망을 키워 온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의원 역시 여기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기시다가 오늘 총리에 취임하고 한국은 내년 3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반년가량 남은 문재인 정부 내에서 한일 관계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은 기시다 정권과 한국의 차기 정권이 반드시 이뤄야 할 ‘한일 대화해’를 염두에 둔 사전 작업이 필요할 때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한·미·일 3국 협력을 중시하는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에 맞춰 “위안부 문제 합의가 공식 합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다. 사죄는 하지 않았지만, 뒤늦게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며 자신의 판단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을 고백한 것이다.
반일(反日) 프레임의 중요 소재로 활용되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문 대통령이 재평가한 마당에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 중국과는 갈수록 멀어지고 북한의 도발이 지능화하는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서로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 4년간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나.
대선 주자들은 기시다 정권 출범을 계기로 한일 관계 전반에 걸친 지뢰들을 제거하며 대화해에 나서겠다고 공약하기 바란다. 기시다 정권도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만행(蠻行)을 철회할 준비를 해 가며 내년 한국 대선 이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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