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오불관언(吾不關焉)
[경향신문]
< 吾不關焉: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 논란이 럭비공처럼 튄다. 애초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이재명 지사 관련 의혹처럼 제기됐지만 법조계 인사들의 관련성이 드러나고 박영수 전 특검 딸의 아파트 분양, 곽상도 의원 아들 고액 퇴직금 수령까지 밝혀지면서 확전되고 있다. 곽상도 의원은 관련성을 부인하면서도 결국 의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는 명분으로 사직의사를 밝혀야 했다. 야당 유력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 아버지 주택 매매 의혹까지 제기됐다. 일파만파다. 가히 불로소득을 당연시하는 부동산 공화국의 복마전이다.
그런데 이런 복마전 사건의 핵심 중 한 사람은 사건 당시 언론사 현직 부국장이면서 대장동 개발 시행사인 화천대유의 대주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김만배씨다. 정계, 법조계 인물들을 끌어들여 사업을 유리하게 이끈 것은 김만배씨의 오랜 언론인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제반 권력의 비판 감시라는 언론의 영향력을 왜곡시킨 전형적 사례다. 이 정도면 언론계에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올 법하다. 하지만 미디어오늘이 사설로 ‘언론인 경제 활동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을 제외하면 다른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언론계에 또 다른 김만배씨가 없을까?
언론계의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91년 수서 비리 당시 한보그룹은 보도를 막기 위해 서울시 출입기자들에게 엄청난 촌지를 돌렸다고 알려졌다. 또 보사부 출입 기자들은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막대한 촌지를 수금(?)했다. 촌지 관행이 드러나면서 언론계가 기자윤리강령도 제정하고, 기자단을 탈퇴하는 등의 자정바람도 일었다. 하지만 이후 촌지가 골프대접, 주식·부동산 정보 제공으로 바뀌었다는 게 정설이었다. KBS는 2001년 골프접대를 받지 말라는 내부지침을 정했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스타파는 2019년 소위 박수환 문자라는 것을 보도했다. 홍보대행사가 기업과 언론사 간부들을 청탁과 기사로 엮어 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MBC 스트레이트는 홍보대행사를 이용해 기사를 돈으로 사는 현실을 고발한 바가 있다. 사실 지금 기사형 광고, 광고성 기사가 만연해 있다. 기자 개개인의 비리에서 구조화된 비리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 김만배씨 사건처럼 언론계의 자성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관련 보도도 거의 없었다.
1990년대 언론계가 자정을 결의했다고 해서 비리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사실이 알려진 것에 부끄러워하는 몸짓이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런 움직임이 개별기자에게 전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령이나 준칙이 만들어져도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내용을 접하지 못한 언론인이 절대 다수이지 않을까? 언론계가 수십년 전 제정하고 개정해온 신문윤리실천요강에는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의 부당 사용을 금지하고, 금품수수 행위 금지, 기자의 광고 판매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언론의 영향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도 지금은 심지어 언론계의 비리가 드러나도 언론이 이를 다루지 않는다. 언론이 다루지 않으면 언론계의 비리가 드러나거나 전파되지 않을까? 언론의 신뢰도 하락은 언론의 정파적 보도로부터 비롯된 바가 크다. 하지만 언론계의 비리나, 기사인지 홍보인지 모르는 기사의 양산 등에서 비롯된 바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언론계가 언론 같지 않은 언론, 언론인 같지 않은 언론인의 확산에 눈을 감고 오불관언의 자세로 임하면 언론의 신뢰를 회복할 길은 요원해질 것이다. 사회의 제반 사건에 사회가 붕괴될 듯 기사를 쏟아내는 것처럼 언론계의 비리 사건에 언론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언론계, 언론인을 보고 싶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 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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