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취중진담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2021. 10. 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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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코트 깃을 세우고 낙엽 지는 숲속으로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상상해보라. 사랑을 고백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면 그 쓸쓸함이 더할 것이다. 전람회의 ‘취중진담(醉中眞談)’은 이럴 때 잘 어울리는 노래다.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 실수인지도 몰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 불안해할지도 몰라/ 하지만 꼭 오늘 밤엔 해야 할 말이 있어/ 약한 모습 미안해도/ 술김에 하는 말이라 생각지는 마/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놓고 돌아서 후회하는지/ 이젠 고백할 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1996년 김동률과 서동욱으로 결성된 전람회의 2집 <Strangers…>에 수록된 곡이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고 신해철은 노래하는 김동률에게 술을 먹였다. 음정과 박자가 살짝 흔들려야 제맛이라는 이유에서다.

1990년대를 휩쓴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TV와 거리를 두는 사람은 김동률이 거의 유일하다. 김현철, 이적, 유희열, 윤종신, 정재형 등이 예능에 얼굴을 내밀 때도 그는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1993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전람회는 ‘기억의 습작’이 담긴 데뷔앨범으로 주목받았다. 신해철이 프로듀서를 맡았지만 모든 곡을 김동률과 서동욱이 썼다. 휘문고와 연세대 동창인 두 사람은 3집을 끝으로 해체, 서동욱은 미국 유학을 거쳐 지금은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찌됐든 ‘취중진담’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드라마와 같은 반열에 올라 있는 명곡이다. 집 전화와 편지가 거의 유일한 고백의 수단이었던 시대, 노래방에서 술에 취해 이 노래를 혼자 불러봤다면 더욱 절절할 것이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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