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출하는 대출 난민②] '민심' 전세대출도 규제?
기사내용 요약
당국 "증가세 지속 여부와 '빚투' 활용 여부 예의주시"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금융당국이 이달 중순 가계부채 추가 관리대책을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 등 실수요 대출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들어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 등 실수요 대출이 큰 폭으로 늘면서, 그간 일종의 '불가침 영역'으로 여겨졌던 전세대출과 집단대출도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전세대출 잔액은 121조4308억원으로, 지난해 말 보다 16조2181억원 늘었다. 9개월 만에 15.4% 늘어난 것이다. 또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702조7123억원) 증가율(4.9%)의 3배에 달한다. 집단대출 역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같은 기간 이들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155조4450억원으로 전월 대비 9652억원 늘어났다.
이런 가운데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전세자금대출, 정책모기지, 집단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이 크게 늘고 있어 들여다보고 있다"며 "무엇보다 최근 늘어나는 대출이 대부분 실수요자라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언급, 규제가 현실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인 6%를 맞추기 위해서는 급속도로 늘어나는 전세대출 등 실수요 대출도 결국 손댈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구체적인 규제 방안도 거론하고 있다. 우선 금융권에서는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줄이는 방안을 예상하고 있다. 현재 주택금융공사·SGI서울보증·주택도시보증공사 등 보증기관들은 현재 금융사의 전세대출에 대해 최대 100% 비율로 보증을 해주는데, 이를 70~80% 정도로 낮출 수 있단 것이다. 보증 비율이 낮아지면 리스크가 커진 은행들로서는 금리를 올리거나 한도를 줄이는 식으로 관리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DSR이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유가증권담보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비율로, 현재 은행권 차주별 DSR 산정 시 전세자금대출은 포함되지 않는다.
고 위원장이 앞서 전세자금대출의 금리 수준 등 조건이 유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을 감안할 때, 당국이 금융사들에 전세대출 금리를 올리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또 주택담보대출과 마찬가지로 전세대출을 받을 때도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는 계약을 갱신할 때 보증금이 오른 만큼만 대출을 내주는 조치가 전 은행권에 확대될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고있다. 이는 KB국민은행이 지난 29일부터 시행한 것으로, 전세대출의 한도를 전셋값이 오른 범위 내(대출 한도 2억원)로 제한하는 것이다. 여유자금은 놔두고 최대한 전세대출을 받아 주식 투자 등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현재 하나은행 등 타 은행들도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금융당국이 전세대출까지 건드리진 못할 것이란 예상도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서민들이 받게 될 피해와 반발 등 후폭풍을 생각하면 금융당국도 전세대출을 직접적으론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가계부채 관리대책의 핵심인 실수요 보호와도 맞지 않기 때문에 금융사들이 알아서 줄이도록 하는 현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들의 선제적인 대출 조이기로 올 하반기 가계부채 증가율이 어느 정도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 시점에서 굳이 전세대출 규제와 같은 고강도 카드를 꺼내들진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용대출, 전세자금대출 등 대출 항목별로 규제를 가하지 않고 증가세가 가파른 금융사들의 총량을 집중적으로 관리해도, 목표치 달성이 불가능하진 않다는 의견이다.
사실상 전세대출 규제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국의 계속되는 압박에 금융사들은 대책이 나오기도 전에 선제적으로 전세자금과 집단대출을 축소하며 자금줄을 조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9일부터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 등의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있고, 하나은행도 지난 1일부터 모기지신용보험(MCI)대출과 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의 일부 상품 취급을 한시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또 최근 하나은행과 계약을 맺은 대출모집법인 6곳 중 3곳이 사전에 협의된 대출 한도를 넘겨 이달까지 이들을 통한 대출취급은 한시적으로 중단됐다.
은행들의 이같은 관리 강화에 지난달 말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모두 증가폭이 소폭 둔화되긴 했다. 지난달 말 전세대출은 전월 대비 1조4638억원 늘었는데, 이는 지난해 말 이후 가장 적은 증가폭이다. 집단대출도 전월 대비 9652억원 증가해 지난 5월 이후 가장 낮은 증가폭을 나타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세대출은 상당 부분이 실수요이기 때문에 정부도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며 "가급적 전세대출 등 실수요는 막지 않겠다는 방침이지만, 증가세가 계속 되거나 전세대출이 본래의 용도 외 '빚투' 등 다른 경로로 쓰이는 지 여부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끝 없이 계속되는 대출 조이기에 실수요자들의 비명은 커져만 가고 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파트 사전청약 11년 만에 입주하는데, 집단대출 막아놓으면 실수요자는 죽어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와 게시 사흘만에 4500명이 넘는 이들이 동의했다. 또 '정부는 무주택 서민 실수요자들의 피울음이 들리지 않는가', '집단대출 규제 풀어주세요', '생애최초 주택구입 꿈 물거품. 집단대출 막혀 웁니다' 등 비슷한 내용의 청원이 지속적으로 올라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럼에도 정부의 강도높은 대출 조이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실수요자 대출이라도 상환능력에 맞게 대출이 이뤄져야 한다"며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대출을 받고 그 대출을 처음부터 상환해 나가는 관행이 확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channa22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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