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 준야 "기시다 총재, 한-일 관계 더 악화시키지 않을 것"
"섣부른 합의보다 지속가능한 한-일 관계 고민해야"
국제정세 변화로 양국 협력할 영역 넓어져
니시노 준야 일본 게이오대 교수(정치학·현대한국연구센터장)는 4일 공식 출범하는 기시다 후미오 정권에서의 한-일 관계에 대해 “한국의 대선, 일본의 총선이 예정돼 있는 이 시점에 뭔가 섣불리 합의를 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속 가능한 한일 관계를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게이오대에서 진행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니시노 교수는 “기시다 (자민당) 총재가 더 이상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장기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한-일 관계만 너무 초점이 맞춰지면 할 수 있는 것이 적다. 양국의 외교안보 정책 틀 속에서 상대국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기시다 총재를 설명할 때 그가 수장을 맡고 있는 파벌 ‘고치카이’(현재 기시다파)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전통적으로 고치카이는 아시아 외교에 역점을 둔 건 맞다. 파벌의 성격이나 기시다 총재의 개인적 성향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구조적 요인, 주변 환경을 살펴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이 너무 심화돼 있다. 과연 중-일 관계 개선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 한-일 관계도 지난 2015년 외무상 당시 ‘위안부’ 합의를 해봤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관계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더 이상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고, 장기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은 할 것이다. 그의 저서 <기시다의 비전-분단에서 협조로>를 보면 북한 등 일본의 안보를 위해 한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외교·안보뿐만 아니라 경제 정책 등 기시다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시다 색깔’을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아베 정권 때 최악의 상황으로 갔던 한-일 관계가 스가 정권에서 사실상 고착화됐다. 정상회담을 하지 못했고, 일본 외무상은 주일 한국 대사를 만나지 않고 있다.
“한-일 관계가 역사 문제라는 현안도 있지만 양국 정상들이 어떻게 시그널을 보내는지, 어떤 의지를 보이는지가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 국민들이 아베 전 총리에 대해 실망하고 있지 않나. 기시다 총재는 스타일이 다르다. 언행에 신경을 쓰고 신중하다.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도 대화를 모색할 것이다. 하지만 중의원 선거 등이 있기 때문에 자민당이나 국민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한일 관계를 염두 할 때 이 시점에 섣불리 뭔가 합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의를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지난 2015년 ‘위안부’ 합의 경험을 비춰보면 그렇다.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넓혀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지난 2019년 이뤄졌던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 조치는 역사 문제와 분리해서 풀 수 있지 않겠나.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정책 대화, 인원 확충 등 일본이 요구했던 사안을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강제동원 대법 판결 등 연결돼 있어) 한·일이 직접 풀기 어렵다면 한·미·일 등 다른 틀을 이용해 경제안보의 관점으로 해결하는 것도 방법이다. 올해 한·미 정상회담, 주요 7개국(G7)+3을 보면, 한국 정부도 공급망 재편 등이 한국의 이익과 연결돼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기시다 총재도 경제안보는 상당히 강조한다. 수출규제를 경제안보 차원에서 한-일이 같이 협력해야 하는 과제로 삼아 실용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북핵 문제의 엇박자도 한-일의 큰 갈등 요소로 보인다. 일본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강조하는 등 강경하다.
“한-일 관계가 역사 문제만 부각되는데,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대북정책, 인도·태평양 전략이다. 지난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가동될 당시, 한-일은 엇박자가 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율이나 협력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 바이든 정부는 다르다. 한-일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의 틀로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협력 가능한 공간이 있다고 본다. 한·일, 한·미·일이 보조를 맞춰 가려면 세 가지가 관건이다. 비핵화 방법, 북핵 위협에 대한 억지 측면에서 방위력 수준, 앞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은 인권 문제다. 히로시마가 정치적 기반인 기시다 총재는 핵 문제나 인권에 강경하다.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긴밀하게 조율해 나가야 한다.”
―지속 가능한 한-일 관계 측면에서 미·중 대립에 대한 공조도 중요해 보인다.
“한-일이 서로 제대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에선 한국이 중국에 가깝게 가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강하다 보니 한국이 중국에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든가, 한국에서의 반중 감정, (아세안 국가와 협력 강화가 담긴) 신남방 정책 등을 보려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국도 일본은 항상 미국 중심이라고 판단한다. 중국은 일본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해 너무 세게 나가면 일본도 곤란한 부분이 있다. 한-일은 미·중 대립 국면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이게 보이기 시작하면 같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 문제가 퇴로 없이 갇혀 있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세 가지를 말했다. ‘지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양국 공식 합의다.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을 인정한 지난 1월 ‘위안부’ 판결은 곤혹스럽다. 마지막이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에 따른) 현금화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일본 사회는 한국의 입장 변화로 받아들인다. 대통령의 말이기 때문에 (다음엔) 행동이나 정책으로 나올 것을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다. 물론 한국의 일방적 행동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방향성을 갖고 한-일이 협의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상황에선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대선, 일본에선 곧 중의원 선거가 있다.
“기시다 총재가 중의원 선거와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이겨야만 안정적으로 정권 운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특히 한국에서도 대선이 있기 때문에 다음 정부 출범 때까지는 관계 개선보다는 관리 국면으로 갈 것이다. 다만 국제질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미·중 관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미·일 협력이라든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일이 어떻게 보조를 맞출지 (기시다 총재도) 고민은 할 것이다.”
―일본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고, 한국도 내년에 대통령이 바뀐다.
“한-일 관계만 너무 초점이 맞춰지면 할 수 있는 것이 적다. 양국의 외교안보 정책 틀 속에서 상대국이 어떻게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일본은 이 지역의 안정과 번영, 북핵이나 인도·태평양 전략 실현을 위해서는 한국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국제질서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해선 일본의 협력 없이 힘들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속보] 이재명 2차 선거인단 58.17% 득표 1위…누적 54.90%
- “부적 선거 포기하라”…윤석열 ‘왕(王)’자, ‘무속신앙 공방’ 비화
- 일본 극우 인사 전면에…기시다 내각에 ‘아베 그림자’
- [단독] 박영수 친척 회사, 대장동 이전 위례에서도 분양 대행
- ‘1천억 배당 수익’ 남욱은 어떻게 대장동 사업 몸통이 됐나
- 연천 군부대 돌파감염…“백신 접종 이전이면 더 심각했을 것”
- 여당 사람들이 윤석열보다 홍준표를 더 버거워하는 이유는
- [양희은의 어떤 날] 길 잃은 그릇, 쓸쓸함에 대하여
- 주디스 버틀러는 말했다 “트랜스 혐오 페미니즘, 받아들일 수 없다”
- 속타는 오세훈…이재명 무죄 ‘구세주’인데, 국힘은 ‘몹쓸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