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강경화 전 장관 ILO 사무총장 도전에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어야"
[경향신문]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66)이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국제노동기구(ILO) 차기 사무총장직에 입후보한 것을 두고 노동계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 전 장관이 노동 관련 이력이 전무하고, 평소 노동 문제에 대한 소신을 보인 적도 없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3일 논평을 통해 “전 장관의 경험과 비전은 ILO 사무총장 직책과 한참 거리가 멀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며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한국의 현실은 ‘노동 후진국’이다. ‘아태지역 출신 여성’임을 내세워도 이런 현실이 덮어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어 “(사무총장 선거에서)노동자 그룹의 14표가 주는 무게와 의미가 가볍지 않음을 명심하라”고 했다. 선거에서 노동계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ILO는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해 1919년 만들어진 유엔 산하 국제기구로, 회원국은 187개국이다. 사무총장 선출은 28개국 정부·노동자·사용자 대표 각 14인 등 총 56명이 참여하는 이사회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로 결정 된다.
민주노총 지적대로 강 전 장관은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고 노동 관련 이력은 없다. 강 전 장관은 1998년 외교통상부 국제전문가로 발탁돼 외교통상부에 입부했다. 이후 외교부 장관보좌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별보좌관, 외교부장관 등을 역임했다. 반면 현 가이 라이더 ILO 사무총장은 영국 노동조합회의에서부터 활동을 이어온 노동계 출신 인사다. 유명세와 정부 지원 등을 힘에 얻고 비전문 인사가 국제노동계의 수장에 입후보 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계에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은 점도 문제다. 정부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했지만, 관련한 국내 노동법 개정은 미루고 있어 비판받고 있다. 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과 달리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은 달성되지 못했고, 노동계가 염원했던 중대재해처벌법은 ‘누더기’ 오명을 받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은 노정 관계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민주노총은 강 전 장관의 공약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국제 노동계는 기술·기후·인구 변화에 따른 다층적인 일의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위기로부터 평등한 회복을 담보하기 위한 대안으로 ‘새로운 사회계약’을 주창하고 있는데, 강 전 장관은 ILO의 가장 중요한 역할에 관한 견해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 강 전 장관은 사무총장에 입후보하며 공약을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것을 강조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과 협력으로 개도국의 일자리 창출을 돕겠다고도 했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강 전 장관 입후보를 보는 노동계의 전반적인 시선은 부정적이다. 정의당은 전날 오현주 대변인 서면 브리핑으로 “노동자 대표를 구속한 상태에서 ILO 사무총장에 도전하는 것은 낯부끄러운 일”이라며 “노동선진국이라는 명예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제기구의 리더를 배출하는 국가가 되려면 국내에서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라”고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도 같은날 페이스북에 비판을 담은 글을 남겼다.
다만, 지금까지 ILO 사무총장에 아시아 출신도, 여성도 없었다는 점은 강 전 장관에게 유리한 점이다. 강 전 장관이 유엔 활동 등으로 해외 인지도가 있고 정부가 적극 지지 의사를 밝힌 것도 이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외교부와 고용노동부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강 전 장관이) 그간 국제무대에서 개도국 지원 및 여성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해”왔다며 “(한국 정부도) 올해 4월 ILO 핵심협약 비준과 함께 6월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문재인 대통령의 ILO 총회 기조연설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노동존중사회’ 구현을 위한 노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차기 ILO 사무총장 선출에는 강 전 장관 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툰지 무아바 국제사용자기구(IOE) 이사, 토고 총리 출신의 질베트 웅보 세계농업기구 사무총장, 프랑스 노동부 장관 출신의 뮤리엘 페니코 프랑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 호주의 그렉 바인스 ILO 사무차장이 입후보했다. 당선자는 현 사무총장 임기가 만료된 직후인 내년 10월1일 임기를 시작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