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우의 바람] 비늘구름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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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정확히 정육각형으로 조각조각 가르고 있는 창살 너머 잔잔히 깔린 비늘구름에 노을빛이 묻어 불그레하게 빛나고 있다".
비늘구름, 낯선 이름이다.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차치하고, 잊고 있었던 구름 이름에 새삼 호기심이 동했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예외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래서 마치 생명체와 같은 구름에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아마추어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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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의 바람]
손석우ㅣ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허공을 정확히 정육각형으로 조각조각 가르고 있는 창살 너머 잔잔히 깔린 비늘구름에 노을빛이 묻어 불그레하게 빛나고 있다”. 비늘구름, 낯선 이름이다.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온 우리말 칼럼을 읽다가 눈을 뗄 수 없었다. 오정희 작가의 단편소설 ‘불의 강’에서 나오는 표현이라고 한다.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차치하고, 잊고 있었던 구름 이름에 새삼 호기심이 동했다.
우선 인터넷 검색이 먼저다. 20여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정보검색사라는 자격증이 유행할 만큼 검색이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검색창에 뜬 비늘구름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작은 구름 조각이 마치 물결 모양 혹은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얇게 펼쳐진 것. 조개처럼 보이기도 해서 조개구름으로 불리거나 하늘에 얼룩이 진 것 같다고 해서 얼룩구름이라 불리기도 한다.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예외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래서 마치 생명체와 같은 구름에 처음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아마추어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로 알려져 있다. 1802년의 일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에 다른 확신이 든다. 아마도 더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구름에 이름을 붙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억했을 것이다.
강단에서는 비늘구름을 권적운이라 가르친다. 고도 13㎞까지 높은 하늘에 만들어지는 구름으로, 물방울보다는 얼음 알갱이로 이루어진 구름이다. 워낙 얇아서 해와 달이 뜨더라도 이를 가릴 수가 없다. 그래도 얼음 알갱이라 곧장 떨어질 것 같지만 워낙 작은데다가 바람에 따라 움직여서 수직 낙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눈과 비가 되어 떨어지더라도 땅에 채 도달하기 전에 모조리 증발해버린다. 이때 증발의 흔적으로 부드러운 털 꼬리 같은 꼬리구름이 만들어진다. 한자어로 미류운이라 부른다.
교과서에 권적운이라고 소개된 데에는 체계적으로 구름을 분류하기 위한 편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기상학이 일본의 영향을 받은 탓도 있다. 아쉽게도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구름의 이름은 모두 한자어로 되어 있다. 권적운의 첫 글자 ‘권’(卷)은 흔히 책 혹은 종이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다소 엉뚱해보일 수 있지만 옥편을 잘 찾아보면 일부 수긍이 가기도 한다. ‘권’에는 구부러진다는 의미도 있다. ‘적’(積)은 쌓여 있다는 의미로 구름이 겹쳐 있음을 나타낸다.
높은 하늘에 구름이 평평히 펼쳐져 있으면 이를 권층운이라 부른다. 기상학에서 분류하는 10가지 구름 중 하나로, 권적운과 비슷하지만 훨씬 넓고 얇게 퍼져 있는 구름을 일컫는다. 면사포처럼 얇다고 해서 면사포구름이라 불리기도 하고, 종종 햇무리나 달무리를 동반한다고 해서 무리구름이라고도 한다. 권적운·권층운과 비슷하지만 더 낮은 고도에 위치해서, 비와 눈을 내리는 구름들은 고적운과 고층운이라 부른다.
혹시 털쌘구름과 털층구름을 아는가? 권적운과 권층운의 다른 이름이다. 흥미롭게도 영어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권적운과 권층운의 영어식 표기는 ‘cirrocumulus’와 ‘cirrostratus’다. 여기서 ‘cirro’는 곱슬곱슬한 털 같다는 의미이다. 이를 한자어로 ‘권’(卷)으로 표기했지만, 우리말로는 ‘털’로 표현한 것이다. 얼마나 정겨운가.
요즘 부쩍 하늘이 맑다. 바람도 쉬어가는 잔잔한 가을 하늘, 어딘가 비늘구름이나 면사포구름이 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햇무리를 볼지 모른다. 운이 좋다면 무지갯빛으로 채색된 오색구름을 볼지도 모른다. 위턱구름이 밑턱구름과 함께 펼쳐진다면 안개구름 위로 양떼구름이 자리 잡고, 그 위로 새털구름이 드러날지 모른다. 만약 제주도라면 한라산을 둘러싼 삿갓구름을 볼지도 모른다.
자, 한번 하늘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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