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 마음, 지주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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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命人)ㅣ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그곳은 본디 바다였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이 지면에 두번째 쓴다.
이번엔 내가 살고 있는 고흥의 '해창만' 이야기다.
해창만에 꽤 많은 논을 농민에게 임대해서 소작료를 받아왔던 논 주인이 내년부턴 그 논들을 태양광 사업자에게 임대하기로 했다고.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법이 가능한지는 몰라도 일년 내내 마음 졸여가며 농사를 지어, 풍작을 해도 농사로는 벌 수 없는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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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서울 말고] 명인(命人)ㅣ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그곳은 본디 바다였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이 지면에 두번째 쓴다. 이번엔 내가 살고 있는 고흥의 ‘해창만’ 이야기다. 주변엔 섬이 많고,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고, 드넓은 갯벌이 있어서 병어, 도미, 쥐치, 낙지, 바지락, 꼬막, 굴 등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고 한다. 특히 조선 시대부터 굴 껍데기를 갯벌에 넣어 종패가 붙게 하는 ‘노지식 굴 양식’이 성행한 곳으로 굴 양식의 시원지라고까지 할 만큼 역사가 깊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엔 조선총독부가 산미 증식 전략의 일환으로 눈독을 들였고, 해방 이후 1960년대 말까지 우여곡절을 겪은 간척 사업으로 해창만은 지금의 간척지가 되었다. 그 간척 사업 중 사고로 30여명이 죽었다고 한다. 간척 사업에 사용할 토사 채취를 위해 인근의 섬들과 육지가 헐려야 했고, 유적으로 보존해야 마땅할 ‘사도만리성’과 ‘사도진성’의 성곽을 헐어 방조제를 쌓았다고 한다. 해창만 간척지는, 보릿고개를 넘던 지역민들에게는 흰쌀밥의 꿈, 저임금·저곡가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박정희에게는 식량 자급의 꿈이었을까?
해창만 간척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우리 식구는 그 논에서 벼농사를 지어왔다. 빌려 짓는 논을 포함하여 100마지기 가까운 농사를 짓고 있는 선배가 한 귀퉁이를 내어주셔서 짓고 있는 자급 수준의 농사다. 그런데 옆지기가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올해는 벼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논을 내어주신 선배가 올해는 우리 논에도 모를 심었다. 100마지기 가까운 농사를 화학비료나 농약 없이 짓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선배 부부가 그 논에서 손수 피를 뽑고 있더란 얘기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선배에게 여쭈었다. “그 많은 농사에 정신없는 와중에 어떻게 이 논은 약을 안 치고 따로 짓고 계신대요?” 선배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덜이 6년이나 약 한번 안 치고 피사리해가며 새로 맹글어논 논인데, 우리가 약을 쳐불믄 이 땅이 얼매나 서운해헐 거싱가?” 가슴이 찡하고, 코끝이 매워졌다. 그런데 이제, 더는 그 논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단다. 해창만에 꽤 많은 논을 농민에게 임대해서 소작료를 받아왔던 논 주인이 내년부턴 그 논들을 태양광 사업자에게 임대하기로 했다고. 전하는 말에 따르면, 태양광 사업자들은 지주에게 논 한 단지, 그러니까 논 여섯 마지기에 600만원의 임대료를 주겠다고 했단다. 지주 입장에서는 한 마지기에 쌀 한 가마니 값을 받는 소작료에 비하면 다섯배나 되는 임대료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계산법이 가능한지는 몰라도 일년 내내 마음 졸여가며 농사를 지어, 풍작을 해도 농사로는 벌 수 없는 돈이다. 그동안 태양광 사업을 선전하는 펼침막을 보면서도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당장 우리 일이 되고 보니 기가 막혀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선배는 “보릿고개 넘긴 지가 얼마라고, 쌀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이 돼부렀으니 큰일일세” 하시고는 한숨을 쉬었다.
할 말을 잃은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미 논이 태양광 사업자에게 넘어갔다는 통보를 받고서도 후배가 농사짓던 논에 들어가 직접 피를 뽑던 선배의 마음은 대체 어떤 마음일까? 우리는 어쩌다 전기를 먹고 플라스틱을 싸면서 살게 되었을까? 농사를 포기해야 오히려 돈이 된다는데, 그런데도 저 논에서 남을 먹이는 농사를 지을 사람은 얼마나 될까? 평생을 농사로 검게 그을린, 주름진 선배의 얼굴에서 나는 문득, 저 멀리 북미에 살았다는 크리족 추장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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