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어떤 날] 길 잃은 그릇, 쓸쓸함에 대하여

한겨레 2021. 10. 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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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의 어떤 날]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가수

그릇을 무척 좋아하지만 구매하기보다 구경하기를 즐긴다. 내 친구들이 결혼하던 1970년대에는 그릇을 혼수로 장만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거나 세트로 산 귀한 것은 찬장에 모셔두고 무슨 날이나 돼야 꺼내 썼다. 어머니가 그릇을 좋아하셨다면, 그 딸은 시집가는 순간부터 이미 찬장 가득 그릇 부자였을 것이다.

나 시집갈 때 우리 엄마는 3합짜리 스테인리스 큰 그릇을 사주시면서 뉴욕 가서 김치 열심히 담가 먹으라고 하셨다. 아닌 게 아니라 양이 많은 잡채나 김치를 버무릴 때 유용하게 썼다. 서울로 돌아올 때도 챙겨 와서 지금까지 쓴다. 100여명 가까이 손님 치를 때도 잘 썼다.(가짓수는 적은 대신 양이 많을 때, 고기를 재울 때, 겉절이 할 때도 잘 썼다.)

어린 날엔 이왕이면 무늬 곱고 마음에 드는 모양, 좋아하는 색의 그릇들 앞에서 서성이며 보내는 시간이 좋았다. 예쁜 것 위주로 구경했다. 담긴 음식의 색이며 모양새를 죽이지 않는 그릇이 좋다는 건, 살림을 좀 한 후에 깨달았다. 여름철엔 투명하고 시원한 식기를, 봄 가을 겨울엔 흰 그릇 위주로 쓴다. 음식을 담았을 때 그릇도 음식도 살아나는 건, 그릇 자체의 무늬가 강하지 않아야 가능하다. 꽃무늬 화려한 예쁜 그릇에 배추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담아내면 국도 찌개도 시큰둥하다. 나이 들면서는 우리 옹기, 질그릇, 놋그릇도 좋다.

친정어머니의 그릇 사랑 덕분에 귀하디귀한 세트 그릇으로 찬장을 꽉 채운 어린 친구가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써야 그릇이지. 그래서 어느 날부터 다 꺼내 쓰기로 했어요. 계절이 바뀌거나 무슨 특별한 날이면 때마다 바꿔 썼어요. 그랬더니 남편과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고요, 번갈아가며 쓰니까 제 마음에도 엄마가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현명한 얘기 아닌가? 써야 그릇이지, 모셔놓고 보라는 건 그릇이 아니지. 물론 모셔놓고 봐야 하는 어마무시한 작품(?)도 있겠으나.

내게는 세트랄 게 없는, 제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다양한 그릇이 있다. “한번에 쫙 산 게 아니고 너 좋을 대로 사니까, 다양하고 재미난다. 난 물려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어도 모시고 살아. 그러느니 그때그때 하나둘씩 장만하는 게 나을 듯해.” 친구의 말이다. 최근에 아예 마음먹고 그릇을 샀다. ‘점포정리 70% 세일’ 때였다. 내가 산 것은 식구들 모일 때 푸짐하게 음식을 담을 우묵하고 연한 미색의 큰 접시들과 과일용 포크, 티스푼들이다. 옛날부터 써온 은수저들은 아예 싸매어두었다.

친구들도 애들 결혼시킬 때쯤 오랜 거실의 벽지와 소파를 바꾸었다고 한다. ‘남의 식구 들이는데 초라해 보여서’라는 이유에서다. 어떤 친구는 최근 아들이 회사 경품 행사에서 로봇청소기를 받아왔다고 한다. 무심코 ‘이제 청소가 편해지겠네’라고 했더니만, 아들이 정색을 하며 ‘내가 결혼하면 쓸 것’이라고 하기에 그 로봇청소기 들고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해서 다들 웃었다. 마흔인 그 집 아들의 결혼 소식에 다들 부러워했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큰아들을 아직도 품고 산다는 선배가 울상이다.

모처럼 가까운 선배 두분과 점심을 했다. 그런데 두분 다 지팡이를 짚고 나타나셨다. 점심은 이제 콩비지와 만둣국으로 메뉴가 바뀌었다. 5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두 선배의 화양연화가 내 가슴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두분이 지팡이 신세로 나타나신 것이다. 1944년생이신 두분은 “칠십은 아직도 창창해. 너도 칠십대 후반이 되어 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우리 가끔씩이라도 보고 살자. 같이 점심 먹자”고 말했다.

서로의 마음속에 인생의 굽이굽이 선명한 스틸사진으로 여러장씩 간직되어 있는 사이인데 이렇게 나이 들어 가는구나. 갑자기 내 발 사이즈를 묻던 언니는 줄 게 있다며 집까지 데려가서 좋은 옷과 신발을 물려주셨다. 노래 갓 시작한 십대 끝자락의 나에게 그렇게 여러가지를 챙겨주시더니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얼 자꾸 주고 싶으신가 보다. 거의 다 나누어주고 교회에도 주었다며 텅 빈 옷장과 신발장을 보여주셨다. 허전해서 부러웠다. 내 옷은 크기나 원단으로 볼 때 누구에게 물려주기도, 그렇다고 걸레로 쓰기도 뭣하다. 원단 소재가 폴리에스테르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 나 떠난 후에 뒷정리를 한다면 이런 개미지옥을 봤나! 하며 욕할지도 모르겠다. 요양원에 계신 어떤 어머님은 병원 방문용으로 입는 봄가을 옷 1벌, 그리고 여름 겨울 옷 각 1벌씩 해서 합이 3벌이었단다. 이제 나뭇잎도 물들 테고, 나무처럼 다 떨구고 가야 할 텐데.

찬장에 고이 모신 내 애착식기는 누구에게 물려줄지 궁리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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