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울고 경례하고..영화 '장진호'에 열광하는 중국

김지성 기자 2021. 10. 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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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장진호'가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영화 예매 플랫폼 '마오옌'에 따르면, 개봉 나흘째인 10월 3일 오후 3시 현재 영화 '장진호'의 입장 수입은 13억 2천만 위안, 우리 돈 2천400억 원에 달합니다. 이 영화에는 중국 영화 사상 최대인 13억 위안(2천3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는데, 개봉 나흘 만에 이미 수입이 제작비를 넘어선 것입니다. 누적 관객 수는 2천7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날짜별 관객 수는 9월 30일 425만 명, 10월 1일 835만 명, 2일 891만 명으로 증가 추세입니다. 중국의 건국기념일인 국경절(10월 1일) 연휴 중국 박스오피스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국경절 당일 흥행 기록 등 11개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기존 중국 영화 '특수부대 전랑2'가 가지고 있는 역대 최고 입장 수입 56억 9천만 위안(1조 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영화사를 새로 쓸 기세입니다.

개봉 나흘째인 3일 오후 3시 현재 영화 '장진호'의 입장 수입이 13억 2천만 위안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마오옌)

'장진호전투' 중국 시각으로 그려…마오쩌둥 아들 죽음 미화도

중국인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영화 '장진호'는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개마고원 장진호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입니다. 당시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진을 계속하던 미군 등 유엔군은 김일성 정부의 임시 수도였던 평안북도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했다가 무려 12만 명에 달하는 중국군에 포위됐습니다. 참고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유엔군 전체 병력의 수는 7만 5천여 명이었고, 장진호 일대에서 고립된 유엔군 병력은 1만 5천여 명이었습니다. 전멸 위기에 처한 유엔군은 극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흥남에 집결해 선박으로 철수했는데, 이게 바로 '흥남 철수'입니다. 장진호전투에서의 유엔군 사상자는 1만 7천여 명. 미국 언론은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이 겪은 최악의 패전'이라 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국군의 피해는 더 컸습니다. 4만 8천여 명이 죽거나 다쳤는데, 전투에서 발생한 사상자 숫자(1만 9천여 명)보다 동상 등 비전투 요인으로 발생한 사상자 숫자(2만 8천여 명)가 더 많았습니다. 어쨌든 북진하던 유엔군이 남쪽으로 돌아선 것이니, 전황의 큰 전환점이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중국이 승리한 전투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 '장진호'의 한 장면


상영시간만 3시간에 달하는 이 영화는 철저하게 중국 시각으로 장진호전투를 그려졌습니다. 미군이 38선을 넘어 중국의 안보를 위협해 중국군의 참전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합니다. 남북한 군인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미군과의 전투에만 집중했습니다. 미군은 압도적인 무기를 갖추고도 힘없이 무너지는 존재로, 중국군은 애국심과 투지로 똘똘 뭉친 존재로 묘사됐습니다. 미군 장군이 후퇴하던 도중 총을 든 채 동사한 중국군을 발견하고 "이런 강한 군대를 상대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영화는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의 죽음에 대해서도 미화를 시도합니다. 마오안잉은 중국군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러시아어 통역 겸 비서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미군 폭격기의 폭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중국군 장교의 비망록에는 마오안잉이 막사에서 불을 피워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 연기가 노출되는 바람에 폭사했다고 돼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24일에는 한 유명 요리사가 계란 볶음밥을 만드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중국 네티즌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습니다. 그날이 마오안잉이 태어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국인들 중에서도 마오안잉이 볶음밥을 만들다 폭사했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중국 공산당은 이를 공식 부인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마오안잉이 총알이 빗발치는데도 지도를 챙기러 작전실에 들어갔다가 폭탄이 떨어져 숨진 것으로 그렸습니다.
 

영화 보고 울고 거수경례 하고…당초 8월 개봉하려다 연기

영화 '장진호'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습니다. 영화 '패왕별희'의 천카이거, '서극'이란 이름으로 잘 알려진 쉬커, 유명 홍콩 영화감독 단테 람 등 중국 본토와 홍콩의 거장 3명이 공동으로 연출했습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런 중량급 감독들이 공동으로 연출하는 것은 파격적인 일로, 장진호 전투의 시기적 배경인 겨울에 촬영을 완성하기 위해 세 감독이 나눠 동시에 촬영했습니다. 천카이거 감독은 중국군의 한국전쟁 참전 부분을, 쉬커 감독은 스토리의 완결성과 디테일한 부분을, 단테 람 감독은 전투 장면을 맡았습니다. 제작진 7천 명에 후반 특수효과 제작 인원까지 합하면 1만 2천 명, 엑스트라 등 출연진은 7만 명에 이릅니다.
영화 '장진호'의 공동연출을 맡은 천카이거 감독(왼쪽)과 쉬커 감독


중국 관영매체 보도들은 칭찬 일색입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인민 군대의 뜨거운 애국심과 당·인민에 대한 충정을 보여줬다"면서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을 생생하게 풀어냈다"고 평가했습니다. '항미원조'는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란 뜻으로 중국이 한국전쟁을 일컫는 말입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를 인용해 "영화 장진호는 국가 주권, 안보, 이익을 확고하게 지키고 경쟁자가 누구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며 "중국인은 문제가 닥쳤을 때 주춤하지 않고 도발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71년 전 상황을 지금의 미중 갈등에 결부시켜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읽힙니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는 영화를 보고 감동해서 울었다는 글이, 영화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관객들의 영상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중국인 관객 (출처=웨이보)


영화 '장진호'는 당초 8월 12일에 개봉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개봉을 늦췄고, 국경절 황금 연휴(10월 1~7일)에 맞춰 개봉했습니다.

영화 '장진호'는 8월 12일 개봉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상황을 이유로 국경절 연휴로 개봉이 늦춰졌다.


국경절 연휴가 긴 데다 코로나 방역조치 때문에 자신이 있는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 건국기념일이라는 의미도 있으니 이보다 더 개봉에 적합한 시기는 없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애국주의를 고취시키기 좋은 시점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영화 '장진호'의 흥행은 이미 예정됐던 것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중국 공산당 당 대회는 1년 뒤인 내년 가을에 열립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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