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서 임신중단권 요구 시위.."시계 거꾸로 가"
[경향신문]
미국의 여성단체들이 2일(현지시간) 전국 곳곳에서 임신 6주 이후 임신 중단을 원천 금지한 ‘텍사스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었다. 여성단체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은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시민단체 90여개로 구성된 ‘위민스 마치’는 이날 전국 600여 도시에서 12만명이 참가한 ‘임신중단 정의를 위한 집회’를 개최했다.
시위대 수천명은 “나의 몸, 나의 선택”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임신 중단 합법화를 유지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워싱턴의 연방 대법원으로 행진했다.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는 시위대 수백명이 여성을 출산 기계로 전락시킨 디스토피아를 그린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를 형상화한 빨간 로브와 흰 모자를 쓰고 행진했다.
시위에 참여한 일레인 바이잘(19)은 AP통신 인터뷰에서 “내 어머니가 1970년대에 임신 중단 합법화를 위한 행진에 참여했는데, 4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남성 시위 참가자인 데이비드 배로우스(74)는 “여성은 아이를 가질 시기를 결정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면서 “누구든지 돌볼 수 없는 아이를 낳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케일라 셀시는 “텍사스가 가는 길을 다른 주들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고 AP통신에 말했다.
텍사스주는 지난달부터 성폭행을 당하거나 근친상간인 경우에도 임신 6주 이후 임신 중단을 원천 금지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6주는 여성이 임신 사실을 자각하기조차 어려운 시점이라 반발이 컸다. 텍사스에서 4개의 클리닉을 운영하는 ‘홀 우먼스 헬스’의 에이미 해그스트롬 밀러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거의 50년 동안 합법적인 임신 중단을 시행해왔다”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태아가 자궁 밖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4개월까지 임신 중단을 허용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텍사스의 임신 중단 금지법은 임신을 중단하는 여성을 직접 처벌하지 않고, 중절 수술에 조력하는 산부인과 의사나 우버 기사 등을 처벌함으로써 위헌 논란을 교묘히 피해갔다.
비영리단체 구트마허 연구소는 바이든 정부 취임 후 6개월 동안 공화당이 장악한 주의회가 텍사스법과 비슷한 90건의 임신 중단 금지 규제를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은 임신 중단 금지법을 부활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먹는 임신 중단약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도입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민주당이 임신 중단 권리를 연방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연방 대법원이 공화당의 임신 중단 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릴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대법원은 오는 12월1일 임신 15주부터 임신 중단을 금지하는 미시시피주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 대법원이 합헌 결정을 내리면 공화당이 장악한 다른 주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도미노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미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보수 6대 진보 3 비율의 보수 우위로 돌아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선임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대표적인 임신 중단 반대론자다.
한편 복음주의단체 등은 이날 워싱턴 프리덤 플라자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한 남성은 시위대에게 “무고한 아기들의 피가 손에 묻었다. 너희에게 화가 있으라”고 외쳤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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