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도 권순일이 날렸다?[팩트체크]

유동주 기자 2021. 10.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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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형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일시적으로 석방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모친 장례식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을 맞이하고 있다. 일요시사=고성준 기자, 사진=김휘선 기자


대장동 의혹 관련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자문을 맡았던 권순일 전 대법관이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의 성범죄 혐의 사건 '유죄'판결에도 관여됐다는 주장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퍼지고 있다.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에 대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형사재판에서 1심 무죄판결이, 2심에서 유죄로 바뀌고 3심에서 유죄가 확정된데 권 대법관이 관여됐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두가지 사실을 주목한다.

권순일, 배당받았던 안희정 사건 '재배당'요구해 실제론 맡지 않아

하나는 권 전 대법관이 주심으로 있던 대법원 1부에 안 전 지사의 상고심 사건이 배당됐었단 점이다.

실제 권 전 대법관은 2019년 3월 말 안 전 지사 사건을 배당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4월 초, 권 전 대법관은 스스로 '재배당'을 요구했다. 권 전 대법관은 안 전 지사 사건은 배당받긴 했지만 8일만에 재배당이란 방법으로 사건을 '사실상' 회피한 것.

당시 '안 전 지사와의 연고 관계'를 이유로 재배당을 요구했다고만 알려졌다. 대법원은 권 전 대법관 의사를 존중해 이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지사 사건은 결국 현재 법원행정처장인 김상환 대법관에게 재배당돼 2심 결과인 '유죄'가 그대로 3심에서도 확정됐다.

권 전 대법관은 안 전 지사와 같은 충남 논산 출신이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와 대학 등에서 학교가 겹치거나 겉으로 드러난 인연은 없다. 공식 행사장 등에서 만난 아는 사이 정도로는 알려졌지만 뚜렷한 인연이 있다고 확인되지도 않았다.

권 전 대법관이 요구한 '재배당'은 형사소송법상 법관에게 '의무'로 규정된 '회피'제도와는 조금 다르다. 회피는 법상 '기피·제척'과 함께 법관이 피고인과의 관계 등에서 정해진 요건에 해당하면 반드시 해야 하지만, 재배당은 법관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 요구하는 것으로 재배당 여부는 전적으로 법원 판단에 달려 있다.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박영수 사무총장 및 주요 참석자들이 6일 오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제 21대 국회의원선거 선거종합상황실 개소식'에서 선거장비 시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과천(경기)=김휘선 기자

2018년 4월 '성인지 감수성' 최초 언급한 대법원 판결했던 권순일
당시 권 전 대법관의 '재배당'요구가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유력한 해석 중 하나는 권 전 대법관이 자신이 주심을 맡은 성범죄 사건에서 국내에선 처음으로 '성(性)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며 원심을 파기 환송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여학생을 성희롱해 해임된 대학교수를 '무죄'라며 복직시키라고 판단한 2심을 깨고 '유죄'취지로 다시 재판하라며 파기환송했던 권 전 재판관이 안 전 지사의 '성범죄' 사건을 맡게 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죄로 뒤집힌 2심에 이어 3심에서도 안 전 지사에게 부정적 결과가 '뻔히'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권 전 대법관이 대법원 판결에선 처음 도입한 '성인지 감수성'은 성폭력 사건에서 주로 여성인 피해자를 약자로 보고 그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여성 단체를 중심으로 여성 피해자를 위해 '다른 증거'가 다소 부족해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모순되지 않으면 신빙성을 배척하지 말라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법적 용어도 아니고 기존 형사법 원칙이나 법리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에선 인정받기 어려웠다.

권 전 대법관이 인정하기 전까지는 '성인지 감수성'이란 표현이 쓰이진 않았지만 일부 하급심에선 다른 물적 증거가 부족해도 피해자 진술이 일관될 경우에 피해자 진술을 신뢰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에선 엄격한 증거주의에 의한 재판 원칙을 고수해 증거가 부족한 성범죄 사건은 '유죄' 인정이 어려웠다. 그러던 중 대법원에서 최초로 권 전 대법관이 이를 도입하자 법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대법원 판결에 포함된 '표현'에 불과했지만 일종의 '기속력'처럼 작용한 탓이다.

여성 단체들도 권 전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언급 판결을 높이 평가했다. 그때부터 법원은 하급심을 포함해 전체 심급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는 횟수가 늘었다.

이에 권 전 대법관에게 안 전 지사 사건이 배당됐을 때 "김지은의 진술을 믿고 유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은 잘못됐다"는 안 전 지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권 전 대법관이 그러한 논란을 의식해 아예 재배당을 요구했을 거란 해석이 법조계에 퍼져 있었다.

권순일의 '성인지 감수성', 안희정 '유죄' 판결에 영향 없었다고 할 순 없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손석희 당시 앵커와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던 김지은 전 수행비서./사진= jtbc캡쳐

권 전 대법관이 과거 안 전 지사 사건의 '유죄'판결에 관여했다는 주장의 또 다른 사실적 근거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권 전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을 언급한 첫 판결이 결국엔 안 전 지사의 2심, 3심과 파기환송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리다.

일부 커뮤니티에선 안 전 지사에 대한 1심에서 무죄가 선고 된 뒤, 권 전 대법관이 이를 뒤집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 판결을 했다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판결의 시기적 순서를 볼 때, 안 전 지사의 1심 무죄가 나온 뒤 권 전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판결이 나온 건 아니다.

권 전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언급은 2018년 4월12일 판결에 등장한다. 안 전 지사 1심은 2018년 8월에 있었다. 안 전 지사 2심은 2019년 2월이었다.

다만 김지은씨의 폭로는 2018년 3월 초였고 안 전 지사는 2018년 4월11일 기소됐다. 안 전 지사 사건이 불거져 한참 시끄럽던 가운데 안 전 지사가 기소된 4월11일의 다음날인 4월12일에 권 전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판결이 나왔던 것은 맞다.

결국 권 전 대법관이 처음 판결에서 언급한 '성인지 감수성'은 안 전 지사 1심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2심과 3심에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재명, 최성, 문재인, 안희정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가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19대 대통령후보자 수도권·강원·제주 선출대회에 참석해 손을 들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잇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실제로 안 전 지사 재판의 2심 재판부는 권 전 대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판례를 직접 언급하며 재판을 시작하기도 하는 등 영향을 받았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2심 판결문에도 17페이지에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김지은씨의 진술 신빙성에 관한 항목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인용해 적시하고 있다.

판결문에서 2심 재판부는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는 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대법원도 2심의 '성인지 감수성' 언급 부분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다.

결과적으로 안 전 지사는 권 전 대법관에게 직접 재판을 받은 적은 없지만, 권 전 대법관이 처음 대법원 판례에서 언급했던 '성인지 감수성'에 영향을 받은 2심과 3심에 의해 '유죄' 판단을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안 전 지사는 징역 3년 6개월형이 확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시민이 출간된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있다. 2020.7.19/뉴스1


한편 김지은씨는 2020년 7월 안 전 지사에게는 성범죄와 2차 가해 책임을, 충남도에는 직무수행 중 벌어진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 3억원대 민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9월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에서 열린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씨 측이 2차 가해로 인해 발생한 건강 문제 입증을 위한 신체 감정서를 신청하자 이를 받아들이고 "신체 감정을 어떤 병원에서 받을지 특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2020년 3월엔 안 전 지사 사건 관련 기록을 담은 '김지은 입니다'란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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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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