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를 두 번 죽이는 자들

고한솔 기자 2021. 10. 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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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컨설팅업체 위장 취업해서 기록한 <골목의 약탈자들>

대만카스테라, 인형뽑기방, 무한리필 고깃집, 벌집아이스크림…. 반짝 뜨고, 난립하다, 금세 사라진 프랜차이즈 가게들이다. 자연스레 궁금할 법하다. ‘떴다방’을 방불케 하는 이 프랜차이즈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안 그래도 힘든 자영업자를 이중고에 빠뜨리는 자는 누구인가.

<골목의 약탈자들>(스마트북스 펴냄)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한겨레> 장나래·김완 기자가 탐사 보도를 통해 한 해 100만 명이 창업하고 80만 명이 폐업하는 창업시장의 숨겨진 그늘을 추적했다. 제보 하나 없이 시작한 취재이기에 기자는 직접 창업컨설팅업체에 위장 취업했다. 예비창업자가 되어 상담받고 200여 명의 전·현직 창업컨설턴트, 100여 명의 자영업자를 만나며 창업자들이 판에 들어올 때부터 밑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나간다.

아무 경력이 없으나 컨설팅업체에 취업한 기자는 ‘과장’ 직함을 받았다. 직함은 허울이고 계약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프리랜서였다. 수수료가 큰 계약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점포 찾는 손님이 있는데 가격을 낮춰서 진행해보실 생각이 있느냐.” 양도양수할 점포를 찾기 위해 하루 200통 이상 전화를 거는 일부터 시작해, 수수료를 올려받기 위해 권리금은 낮추고 예상 수익을 짜맞춰 손님을 연결했다.

창업컨설팅업체는 권리금을 더 받으려는 양도인과 덜 내려는 양수인 사이에서 장난질을 치거나, 프랜차이즈 업체와 예비 창업자 양쪽에서 수수료를 받아챙기며 이익을 극대화한다. 퇴직금을 쏟아부어 창업하고자 하는 50~60대 퇴직자들은 인터넷 검색으로 창업컨설팅업체를 알게 되는데, 창업○○, 점포○○, 장사○○ 등 다른 이름의 업체는 한곳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월 수익만 강조하거나 유명 브랜드 매물로 눈길을 끌어 창업컨설팅업체 사무실을 직접 찾아오게 한다. 지옥의 시작점이다. 그 과정에서 권리금 5천만원을 제시했다가 한 푼도 못 받고 헐값에 매장을 넘기는 피해 사례가 생겨난다. 위장 취업, 전·현직 관계자나 피해자 인터뷰 등으로 건져올린 사례들이 생생하다.

책은 이런 창업컨설팅 문제부터, 해당 업종에 대한 연구, 개발 없이 그럴듯한 브랜드만 만들어놓고 가맹점을 모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새로운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드는 ‘떴다방 프랜차이즈’, 깜깜이 계약, 감아오기, 리턴, 특수점포, 100% 풀오토, 권리금 문제까지 자영업자를 착취하는 각종 술수를 분석한다. 창업컨설팅 피해 사례, 초보 자영업자를 노리는 함정 등이 책에 정리돼 있다.

코로나19 위기에 창업컨설팅업체는 더 악질적으로 변모했다. 저자는 이들 업태가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거나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지음, 이데아 펴냄, 1만8천원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한국 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보고서. 능력주의는 사회 구조적 모순을 개인의 문제로 치환시켜 불평등은 숨기고 불공정에 시선을 가둬버린다. 이백충(월수입 200만원 이하), 지균충(지역균형전형으로 대학 진학) 등 “멸시하는 능력주의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벌레투성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따뜻한 인간의 탄생

한스 이저맨 지음, 이경식 옮김, 머스트리드북 펴냄, 1만9800원

폴란드 해변 도시 소포트에 학생 80명을 모아놨다.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 ‘유능하고 냉철한 사람’을 묘사하는 글을 읽고 현재 실내 온도를 추측해보라고 하니, 전자의 글을 읽은 학생들은 후자보다 실내 온도를 평균 2도 높게 추정했다. 물리적 온도와 사회적 온도는 상호 영향을 준다는 실험의 하나.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진화심리학으로 체온의 진화사를 풀어나간다.

부의 흑역사

니컬러스 색슨 지음, 김진원 옮김, 부키 펴냄, 2만2천원

생산 부문에 자본을 공급하는 금융 본연의 역할을 벗어나 부의 약탈자로 변모하는 ‘금융화’의 전모를 추적한다. 글로벌 경제·정치 저널리스트이자 분석가인 저자는 금융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다른 부문을 밀어내는 ‘둥지 속 뻐꾸기’라고 지적하며 경제 전반과 민주주의에 끼치는 악영향을 고발한다.

정책의 시간

원승연 외 지음, 생각의힘 펴냄, 1만8천원

경제학자 11명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5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경제정책의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재정, 복지, 교육, 저출생, 의료, 외교 등 곳곳을 들여다보며 각 정책과 그 정책이 낳은 문제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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