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물 베기 vs 물로 칼 베기 [물에 관한 알쓸신잡]

물로 재료를 자르고 가공하는 워터젯 기술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10월이 되면서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이 참 많은 계절입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이 가장 많은 달은 5월이 아니라 10월이라고 합니다. ‘5월의 신부’라는 표현 때문에 5월에 결혼식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5월은 10월과 11월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부부 사이를 표현하는 속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은 칼로 베도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다시 합쳐져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이러 이유 때문에 부부는 싸워도 곧 화해하고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로 부부싸움에 비유되곤 했습니다. 어떤 일이 금방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이 말을 쓰곤 합니다.

칼로 물 베기가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물로 칼을 벨 수는 없을까요?

우리 속담에 ‘낙숫물이 바위를 뚫다’는 말이 있습니다. 낙숫물은 지붕의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을 말합니다. 작은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 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의미로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지요.

오랜 시간에 걸쳐 떨어지는 낙숫물이 돌을 조금씩 깎아 결국 구멍을 낼 수 있다면 돌에 부딪히는 물의 압력을 높일 경우 보다 짧은 시간에 돌에 구멍을 뚫을 수 있고, 압력을 아주 많이 높인다면 물로 돌·칼 같이 아주 단단한 물건도 자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소 황당해 보이는 이 생각이 1800년대부터 현실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적용된 분야는 채광입니다.

1850년대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동안 등장했는데 물을 고압으로 분사해 지표면에 있는 흙이나 암석을 제거해 금광맥을 찾는 수력 채광(Hydraulic mining)에 적용됐습니다.

수력 채광방식은 물로 흙과 암석을 씻어내면서 사금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산과 하천에 대한 환경 피해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흙탕물과 토사로 하류 농경지는 황폐화됐고 하천 바닥에 토사가 쌓이면서 하천 수위가 높아져 침수 피해도 늘었습니다. 결국 소송이 잦아지고 규제가 강화돼 이 채광방식은 사라지게 됩니다.

물에 의한 침식 작용은 돌도 깎을 수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물을 분사해 재료를 자르거나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인 워터젯(Waterjet)은 1950년대 들어서야 개발됐습니다. 절단할 수 있는 재료는 종이와 같은 부드러운 재료에 한정되었습니다.

워터젯의 절단 능력을 높이려면 고압의 물을 분사할 기술이 필요한데 당시에는 높은 압력을 만들어 줄 펌프도 없고 높은 압력의 물을 새지 않게 해줄 패킹 기술도 부족했기 때문이죠.

1970년 중반 들어 고압 펌프와 패킹 기술이 개발되면서 워터젯은 다양한 소재를 가공하거나 절단하는데 본격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워터젯은 대기압의 3000~4000배 되는 초고압의 물을 1mm 미만 미세한 노즐로 분사해 소재를 절단하거나 가공하는 기술입니다.

순수하게 물만 이용해 고무·플라스틱 등 부드러운 소재를 가공할 수 있고 초고압수에 규사와 같은 연마제를 혼합할 경우 절단 능력이 더욱 높아져 철·유리·스테인리스·티타늄 등 두껍고 강한 재질도 가공할 수 있습니다.

기존 레이저를 이용하는 방법에 비해 절단하는 동안 열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재료의 변형도 적고 미세한 가공이 가능한 것이 장점입니다.

레이저를 이용하는 기술은 절단할 때 열이 발생해 플라스틱 같은 연성재료를 가공할 때 절단면이 열에 의해 변형될 가능성이 큽니다.

워터젯은 열이 발생하지 않아 가공 후에도 제품의 변형이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공하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기기를 바꿀 필요 없이 워터젯 하나로 플라스틱과 같은 연성재료와 금속 등 강성재료도 가공할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예전엔 상상하지도 못했던 물로 칼을 베는 것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칼로 물베기에 비유한 부부싸움도 화해를 한다고 해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칼로 물을 벨 수도 있고 물로 칼을 벨 수도 있겠네요.

이명철 (twomc@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