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폭탄 만났다..美 "기밀정보 공개 안하면 연말 강력한 보복 당할수도" [MK위클리반도체]

이종혁 2021. 10. 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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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위클리반도체] 반도체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반도체 재고와 판매 정보를 내놓으라고 요구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으름장'이 단순 엄포에서 그치지 않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 상무부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 연방 관보(Federal Register)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 수요 기업 전부에 반도체 생산 시스템, 재고, 주요 생산 제품부터 핵심 고객사, 고객사별 매출, 6개월간 증설 계획까지 다양한 정보를 상무부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기한은 오는 11월 8일까지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보복 또는 강제 제출 조치가 이르면 올해 말쯤 뒤이을 것으로 우려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전기차(EV) 배터리를 비롯한 여타 첨단 제조업에도 같은 요구가 밀려들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미국이 오는 11월 8일까지 답변을 요구한 기업 대상 설문은 재고·판매에 더해 핵심 고객사별 매출 정보, 생산 전략, 향후 공장 증설 계획까지 묻는 것으로 확인됐다. 설문 대상 기업도 당초 백악관 화상회의에 참석한 곳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 전부를 포함했다. 삼성전자와 TSMC뿐 아니라 SK하이닉스까지 사정권에 든 셈이다.

미국 연방 상무부가 지난달 24일 밝힌 반도체 공급망 설문조사는 매출과 수주 및 재고 현황, 고객 정보 등 사실상 경영 정보 일체를 요구하고 있다. 올해까지 최근 3년치 매출액, 제품별 매출과 원재료·장비 구매까지 설문에 담겨 있다. 상무부는 반도체 기업의 생산 제품별 3대 고객사와 고객사별 예상 매출 규모까지 물었다. 설문은 반도체 제조업체와 원자재·장비업체뿐만 아니라 자동차·정보기술(IT) 산업을 포함한 반도체 고객사들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월평균 반도체 주문량,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 앞으로 6개월간 구매 예정 수량, 구매계약 기간을 제출해야 한다.

이번 설문은 기업으로선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생산 전략과 공장 증설 계획까지 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설문 내용을 보면 각 기업이 생산하는 집적회로(IC) 유형, 원자재와 설비 종류, 생산에 걸리는 시간, 주문이 특별히 많은 제품, 재고 상황, 생산 병목이 발생하는 지점, 공급 할당 방식 등 아예 생산 전략 전반을 다룬다. 또 앞으로 6개월간 공장 증설 계획과 증설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소까지 담겼다.

미국 정부에 제공된 이들 기업의 극비 경영 정보가 인텔과 마이크론, 애플 등 미국 내 경쟁사에 흘러들어갈 경우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특히 인텔은 올해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해 삼성전자와 TSMC를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은 올 초부터 정부·의회가 함께 100억달러(약 11조7000억원) 규모 반도체 보조금 법률을 제정하며 반도체 산업 키우기에 나섰고 인텔은 이를 등에 업은 상태다. 인텔은 235억달러를 투자해 미 애리조나주에 파운드리 공장 2곳을 새로 짓기로 했다. 여기에 마이크론도 첨단 D램과 낸드플래시 기술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고객사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애플 등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 마이크로소프트(MS)·IBM·아마존 같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테슬라·BMW·폭스바겐·아우디 등 유수의 완성차 정도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는 내부 거래를 빼면 퀄컴과 엔비디아가 수탁생산(파운드리) 최대 고객, 구글과 다수의 글로벌 IT 업체가 반도체설계전문(팹리스) 사업 고객으로 추정된다.

고객사 이름과 각각에 대한 매출은 기업들이 절대 공개하지 않는 극비 정보다. 향후 거래 가격 협상과 신규 고객 확보에 차질을 주며 경쟁사에 강·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퀄컴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만 TSMC와 퀄컴·애플에 알려진다면 삼성전자는 TSMC에 약점을 노출하는 동시에 퀄컴이나 애플과의 협상에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설문을 계기로 미국이 현지 추가 투자를 종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오스틴·테일러를 주요 후보지로 점찍고 170억달러 규모 첨단 파운드리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실리콘밸리 연구개발(R&D) 센터에 1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국내 공장을 제외하면 중국 우시·충칭에만 메모리 생산 기지를 두고 있어 향후 바이든 정부가 미국 공장 신설을 거세게 압박할 수 있다.

일단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기밀 제출 요구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28일 기자들과 만나 "내부적으로 (응할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설문에 응하려면 핵심 기밀을 미국 정부를 포함한 외부에 제공하는 게 법률상 위배 소지가 없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40여 일 기간이 남은 만큼 충분히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반도체 업계 대표들과 영상회의를 진행하는 도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 들고 있다. /사진제공=AP연합뉴스
하지만 기업들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장관은 "설문에 답하지 않으면 국방물자생산법(DPA) 등 다른 강제 수단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DPA는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제정된 법이다. DPA에 따라 미국 정부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 필수 물자 공급 계약을 강제하거나 물자 배분 시스템을 통제할 수 있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은 이에 대해 "상무장관의 발언만으로는 어떻게 DPA를 발동할지,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면서도 "적어도 미국 정부의 반도체 핵심 정보 취득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상무부는 우선 자발적 제출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겠지만,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올해 말 내지 내년 초 경 보복 조치 또는 자료 제출 강제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또 이번 자료 제출 요구가 반도체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추후에는 배터리까지 번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게 이 로펌의 전망이다.
이현덕 원익IPS 대표, 이석희 SK하이닉스 대표,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정배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회장 겸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 이준혁 동진쎄미켐 부회장(왼쪽부터)이 2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반도체 산업 연대와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박형기 기자
반도체 업계를 향한 바이든 정부의 강한 압박은 삼성전자 같은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엔 어려울 것이라는 염려가 많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국내 정부 부처와 기업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의 압박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와 기업은 우선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 내에 '투자애로 접수창구'를 신설하고 관계부처·지방자치단체 등이 참여하는 '반도체 투자 점검회의'를 운영해 나가기로 했다. 이 점검회의는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이 주재해 반도체 기업 투자 관련 인허가, 규제 애로사항 점검 및 해소 방안 등을 논의한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열린 '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 출범식에서 "한미 양국 정부간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의 대화 채널을 구체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양국 정부의 긴밀한 협의로 발전적 논의를 기대한다"며 정부가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탤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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