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쇼팽 콩쿠르는 공정한가요?
콩쿠르의 콩쿠르, 최고 권위의 쇼팽 콩쿠르 본선이 쇼팽의 조국 폴란드에서 내일(현지 2일)부터 시작된다.
'1점 테러' 이겨내고 우승했던 조성진
정치가 된 콩쿠르... 쇼팽 콩쿠르 수난사
공산권 맹주 소련과 개최국 폴란드의 자존심 대결
냉전 시대 동구권...환영받지 못한 미국 연주자들
이 일을 계기로 심사 시스템도 바뀌었다. 각 라운드 채점 결과를 심사위원들이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심사위원들 스스로 자신의 점수가 편향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만든 제도적 조치였다.
1965년 7회 대회는 그간 찬밥 신세였던 미국 연주자들이 강하게 저항했던 콩쿠르로 기록돼 있다. 당시 우승자는 훗날 피아노의 여제로 추앙받게 되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였다. 아르헤리치의 우승 자체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콩쿠르 과정 내내 폴란드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 뒀던 소련과 이에 맞서는 초강대국 미국 간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미국인이 쇼팽을 잘 연주하면, 앞으로 콩쿠르에서 계속 미국이 우승하지 않겠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심사 인정 못해! ... 관객들의 반란
당시 관객들은 캐나다 출신의 존 헨드릭슨의 드라마틱한 연주에 호의적이었다. 폴란드에서 폴란드 피아니스트가 우승했는데도, 폴란드 관객마저 존 헨드릭슨의 연주에 열광한 사람들이 많았다. 헨드릭슨이 결선 진출에 실패하자 관객들은 분노했고, 대회가 끝날 때까지 항의 시위가 벌어졌을 정도였다. 심사위원들은 성난 관객들의 마음을 추스르고자 결선이 열리기도 전에 헨드릭슨에게 '폴란드 음악 비평가상'을 수여했다. 에든버러 대학의 음악사 연구가인 리사 맥코맥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관객들의 항의는 짐메르만의 우승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강력했다"고 말했다.
콩쿠르 역사상 최대 스캔들... 이보 포고렐리치 사건
포고렐리치는 때로는 악보의 세부 지시사항을 과감히 무시하며 자신의 의도대로 곡을 해석했다. 누구는 "포고렐리치가 쇼팽을 죽였다"고 불쾌해 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포고렐리치가 새로운 쇼팽의 시대를 열었다"며 환영했다. 의상부터가 파격적이었다. 가죽바지에 흰색 셔츠, 검은색 끈 넥타이를 걸치고, 엄격하고 보수적인 콩쿠르 무대에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언론은 "포고렐리치가 쿠데타를 기획했다"고 표현했다.
포고렐리치가 1라운드를 통과하자, 심사위원이었던 루이스 켄트너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포고렐리치 같은 사람이 2라운드에 진출하면 난 심사위원단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격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관객들은 콩쿠르 무대에서 보기 힘든 앙코르까지 요구할 정도로 포고렐리치에 열광적이었다.
결국, 포고렐리치는 결선을 앞두고 3라운드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심사위원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사임해버렸다. 사실, 루이스 켄트너의 사퇴는 켄트너의 제자가 모두 중간에 탈락했기 때문에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아르헤리치의 사임은 파장이 대단했다. 1965년 콩쿠르 우승자이자,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던 피아노의 여제가 심사위원 자리를 걷어찼다는 소식은 콩쿠르의 신뢰도가 훼손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아르헤리치는 파격적인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보수적인 심사위원과 함께 섞이기 싫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르헤리치는 그날 바로 폴란드를 떠나버렸다. 포고렐리치도 콩쿠르 직후 "일부 심사위원들은 쇼팽이 항상 똑같기를 원한다", "(나의 탈락으로) 쇼팽은 그의 작품이 재해석될 기회를 거부당했다"고 말하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1,000석 규모의 공연장 밖에는 최소 3,000명이 몰려들었다. 관객들은 몰아치는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무대 뒤의 문이 부서졌고, 100개의 문 앞에 배치된 보안요원들이 홀 안으로 밀려들었다. 포고렐리치가 무대 위로 걸어가자 청중이 열광했다. "이보! 이보!" "
- 뉴욕타임즈 <Yugoslav pianist stirring music world: Not thinking about the music> 1980년 11월 1일자
당시 우승자는 베트남 출신의 당 타이손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딛고 우승한, 첫 아시아 출신 우승자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성도 뛰어났다. 하지만 모든 이목은 포고렐리치에게 집중됐다. 이듬해 포고렐리치는 뉴욕 카네기홀에 데뷔했고, 도이치 그라모폰과 독점 계약을 맺으며 수많은 음반을 발표했다. 우승자보다 더 큰 부상을 받은 거나 다름 없었다.
1980년 엄청난 폭풍이 지나간 뒤, 쇼팽 콩쿠르의 공정성 논란은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당시의 파장이 워낙 커서, 주최 측 입장에서는 콩쿠르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공정성 시비를 없애지 않으면 안됐을 것이다. 80년대 탈냉전과 더불어 소련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점, 강대국들이 콩쿠르를 통해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려던 ‘문화 제국주의’가 약화된 점도 영향을 미쳤던 걸로 보인다. 냉전 이후 쇼팽 콩쿠르는 '쇼팽답게' 연주한 피아니스트들을 수상시키겠다는 목표 의식도 명확해졌다.
하지만, 더 복잡하고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쇼팽 다움'이란 무엇인가
대규모 공연이 일반화되고, 깊은 잔향과 강력한 사운드를 낼 수 있도록 피아노 기술이 발전하면서, 쇼팽다움 역시 변모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연주 스타일도 달라졌다. 대중음악도 어쩔 때는 록이, 어쩔 때는 R&B가, 또 어쩔 때는 힙합이 주류가 됐듯 말이다.
쇼팽다운 연주가 이렇게 변한다면, 도대체 쇼팽 콩쿠르는 무엇을 쇼팽다운 연주로 규정하고 심사하며 평가할까. 쉽게 말해,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하는가.
쇼팽 콩쿠르에 참여하는 연주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쇼팽다움'을 제시하고, 서로 경쟁한다. 가령, 2015년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의 연주는 건축학적으로 신중히 설계된, '계획적인 쇼팽'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의도한 바를 표현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수많은 음표 중에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음표를 뽑아내 멜로디 라인을 살리고, 강약 대비도 명확하다.
당시 조성진은 결선에서 17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2명의 심사위원에게 만점인 10점을 받았는데, 3위에 입상했던 미국의 케이트 리우는 3명의 심사위원에게 10점을 받았다. 10점은 한 심사위원당 단 한 명의 연주자에게만 줄 수 있다. 케이트 리우는 곡이 느려지더라도 시간을 들이며 섬세하게 접근하는 '명상적인 쇼팽'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를 지지하는 심사위원만큼이나 이에 동의하지 않은 심사위원도 있었다는 걸 방증한다.
2010년 콩쿠르 역시 비슷했다. 당시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는 쇼팽을 처연하고 고통스럽게 연주한다. 그녀의 소나타 2번 연주는 꺽꺽 울음을 삼키듯 순간순간 머뭇거리는 모습이 묘한 아픔을 준다. 준우승을 한 잉골프 분더는 우아하고 침착하게 쇼팽을 끌어갔다. 타건이 참 건강한 연주자였다. 당시 분더가 우승했어야 했다며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지만, 심사위원들이 고통스러운 쇼팽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즉, 쇼팽 콩쿠르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기교적으로 뛰어난 연주자를 골라내는 자리가 아니다. 연주자들이 각자의 해석으로, 자신 만의 쇼팽다움을 제시하면 심사위원들은 그 해석을 협의하고, '판정'을 내린다. 당연히 '쇼팽다움'의 정답지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시대 최고의 쇼팽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 시대 최고의 젊은 연주자들의 '경쟁'을 지렛대 삼아, 우리 시대가 지향하는 쇼팽다움을 모색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아우른다.
결국, 쇼팽 콩쿠르는 단순히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을 뽑는 경연대회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쇼팽다움을 협의하고, 종국적으로는 합의하는 '학술대회'에 가깝지 않을까.
2021년 쇼팽 콩쿠르, 여기서 합의될 '올해의 쇼팽다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추신) 쇼팽협회에서는 1라운드부터 결선까지 콩쿠르의 모든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다. 채팅방도 운영한다. 음악 애호가들이 채팅방에 모여 참가자들 연주를 평가하기도 하는데, 이걸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안타깝게도 채팅은 영어로 해야 한다. 영어가 아니면 쇼팽협회에서 계속 영어를 쓰라고 닦달한다. 그렇더라도 가서 한국인 참가자들을 응원해 보자.
(쇼팽협회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c/chopininstitute)
(구성 : 이현식 선임기자, 장선이 기자, 김휘란 에디터 / 디자이너 : 명하은, 박정하)
# 이경원 기자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세요.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08/clips/1835
[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08/clips/18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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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기자leek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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