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경희 기자 2021. 10. 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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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사연이었다.

자주 걸려오는 제보 전화 중 하나였지만 쉽게 끊을 수 없었다.

아이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있고, 그 남자친구가 아이들을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독자들도 아이의 처지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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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프리스타일] 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아동학대 신고 접수에 따른 ‘즉각분리’ 조처로 세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이 기자와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긴 사연이었다. 자주 걸려오는 제보 전화 중 하나였지만 쉽게 끊을 수 없었다. 경기 김포에서 이주민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대표는 ‘그런데’나 ‘알고 보니’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그의 말처럼 사건은 ‘그런데’ ‘알고 보니’ 겉보기와 달랐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혼자서 어린 세 자매를 키우는 엄마가 있다. 그런데, 엄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다. 알고 보니, 첫째와 둘째도 미등록 아동이고, 막내만 등록 아동이다.” 어느 날 이 가족에 대해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 아이들은 강제로 집을 떠나 시설로 들어가야 했다. 지난 3월30일부터 시행된 ‘아동학대 2회 신고 시 즉각분리’ 제도에 따른 결정이었다(〈시사IN〉제724호 ‘죄는 어른이 짓고 벌은 아이가 받고’ 기사 참조).

기사가 나가기 하루 전 센터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그는 최근 조사에서 불거진 문제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이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있고, 그 남자친구가 아이들을 학대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일단 기사를 보류했다.

인터뷰를 했던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김예원 변호사에게도 사정을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잠깐 침묵했다. “기자님, 실제로 아동학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조사를 통해서 나오겠지만요, 그동안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시설에 있어야 하잖아요. 아동학대가 있었다면 어른이 벌을 받아야지 왜 아이가 받나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주시면 안 될까요?”

여전히 어른의 시각에서, 어른들의 입장을 살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창피했다. ‘어른 중심 사고’는 그만큼 관성이 강했다. 일주일 동안 취재를 하고도 스스로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바로 그 고정관념을 깨달라고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들었다. 그래도 이대로 기사를 포기하면 기자이기 전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취재를 이어갔다. 긴급분리를 당하는 아이의 시각에서 바라보자 그제야 모든 절차가 부당하게 느껴졌다. 독자들도 아이의 처지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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