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라이언 일병이, 한국에선 D.P.가 나오는 이유

이상원 기자 입력 2021. 10. 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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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인기가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8월27일 첫 공개 이후 한 달간 ‘한국의 top 콘텐츠 10’에서 수위권을 지키고 있다. 육군 헌병대 ‘군무 이탈 체포조’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통해 병영 부조리를 다룬 드라마이다. 정치권에서도 언급된다. 모병제 논의와 결부하는 대권 주자도 있다. 무엇이 ‘〈D.P.〉 열풍’을 불러왔을까. 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새삼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실제 같지 않은 군대만 영상으로 봐왔지?’

ⓒ넷플릭스 제공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는 인기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 소재다. 21세기 한국 창작자에게는 특히 더 매력적이다. 우선 소지가 금지된 총기가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작품 스케일이 커진다. 남북 대치와 징병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몰입도가 높다. 군이라는 ‘전문 분야’에 큰 관심을 가진 잠재적 관객이 적지 않다. 한국 최초의 천만 영화 2편(〈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이 모두 군사물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동경비구역 JSA〉, 〈알포인트〉, 〈고지전〉 등 수많은 군 관련 영화가 나왔다.

2010년대 들어서는 군을 다루는 매체가 더 다양해졌다. 2016년에는 제작비 130억원을 들인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는 중화권에서도 히트를 쳐 한류 열풍을 이끌었다. ‘군대 예능’까지 나왔다. 2013년 처음 방영한 〈리얼입대 프로젝트 진짜사나이〉가 대표격이다. 연예인들이 출연해 병영을 체험하고,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담았다. 지난해 나온 웹예능 프로그램 〈가짜사나이〉는 〈진짜사나이〉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연예인과 인터넷방송인을 모아서 〈진짜사나이〉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UDT 훈련을 체험시켰다. 지난 6월 종영한 채널A 〈강철부대〉에는 특전사, 해병수색대 출신들이 출연해 임무 수행 능력을 겨뤘다.

그런데 〈D.P.〉를 이 계보에 넣기에는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군을 다룬 문화 콘텐츠는 대개 역사물이거나 판타지이다. 한국 전쟁의 포화는 너무 먼 이야기이고, ‘짬밥’이 ‘맛있다’는 연예인의 말은 진실이 아니다. 〈D.P.〉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않았던 오늘날의 군대를 소재로 삼았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현실의 군인은 숭고하지도 비장하지도 않다. 전쟁이 없기 때문이다.

〈D.P.〉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별종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주류에 속하는, 군을 다룬 문화 콘텐츠 계보가 또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적지 않은 영화와 TV드라마, 예능프로그램이 군 내 부조리를 ‘추억’으로 포장했던 반면, 이 작품들은 폭력적이고 비루한 군인의 일상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효시 격이다. 병영 내부의 잔혹한 일상과 그 대물림 과정을 그렸다. 군 당국의 촬영 협조를 받는 과정에서 윤 감독은 실제 영화 내용과 다른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기안84 작가의 웹툰 〈노병가〉(2008)는 의경 내부 부조리를 다뤘다. 구타와 가혹행위가 빈번했던 2000년대 초중반의 상황을 여과 없이 전했다. 최규석·연상호 작가의 만화 〈창〉(2006)도 내무반 폭력이 주된 소재다. 이들은 드라마 〈D.P.〉 원작인 웹툰 〈D.P 개의 날〉(김보통 작, 2015)의 배경에 있는 작품들이다. 〈태양의 후예〉류의 판타지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 그늘에는 ‘진짜 현실’을 고발하는 콘텐츠가 조용히 입소문을 끌어왔다.

정작 밀리터리 장르의 본산인 할리우드에서는 병영 부조리를 다룬 작품을 찾기 어렵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17〉 등 군대가 소재인 미국 영화 대부분은 ‘전쟁 영화’이다. 〈어 퓨 굿 맨〉(1992)은 미 해병대 내부 가혹행위를 다뤘지만, 〈D.P.〉처럼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은폐’를 폭로해내는 법정드라마에 가깝다. 이는 실제로 군 내부 가혹행위나 부조리가 한국에 비해 드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 퓨 굿 맨〉의 모티브가 된 관타나모 기지 해병대 살인사건 이후 미군은 가혹행위 척결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부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병제 특성상 일반인의 관심이 한국보다 낮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군으로 복무했다는 한 누리꾼은 해외 온라인 게시판에서 “미군에도 〈D.P.〉와 비슷한 가혹행위가 있다”라고 적었다.

군과 군인을 보는 근본적 관점에도 차이가 있다. 이것은 군인이란 누구인지, 왜 필요한지의 문제다. 병영 문화의 수준과 별개로, 한국과 미국 사회가 자국 군인에게 갖는 감정의 결은 다르다. 경희대학교 유정완 교수(영문학과)는 논문 ‘사냥꾼과 병사, 그리고 베트남 전쟁(2012)’에서 미국이 병사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해왔는지 적었다. 여기 따르면 미국은 ‘성자-병사’, ‘시민-병사’, ‘사냥꾼-병사’라는 세 가지 전통으로 군인상(像)을 구축해왔다. 성자-병사는 백인 청교도를 북미 원주민에게서 지켜내는 군인이다. 시민-병사는 영국에 맞서 자발적으로 무장한 민병대에서 나왔다. 사냥꾼-병사는 서부개척 과정의 개척민을 뜻한다.

미국에서 자리잡아 온 세 군인상의 공통분모는 주체성과 자발성이다. 군인은 자원해서 국가를 지키고, 국가는 군인의 시민권을 보장한다. 논문에서 유 교수는 “미국이 세계에 흩어진 병사의 유골을 찾기 위해 과장된 노력을 기울이거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다양한 기념물을 만들고 기념하는 것은 (…) 공동체의 자발적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역할을 강조하는 이상적 시민-병사의 개념이 깔려 있다”고 적었다. 병사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집단이 목숨을 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그 대표적 서사라고 유 교수는 본다. 말하자면 국가는 개인(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개인도 최선을 다해 국방에 복무하라는, 오랜 계약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한국 병역 제도는 주체성과 거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과거 논문에서 한국의 징병제는 “국민이 병사가 되어 국가안보의 도구로 적응해나가는 과정”이며, 군 문화를 바꾸고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징병제 그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적었다(‘징병제하 인권침해적 관점에서 군대문화 고찰’, 2009). 대중문화는 한국 병역 제도가 낳은 군인상을 반영한다. 이 ‘도구’를 슈퍼맨과 같은 초인적 존재로 묘사해 소비하거나(〈태양의 후예〉 〈강철부대〉), 그들의 불쌍한 처지를 동정하는 방식이다(〈용서받지 못한 자〉, 〈D.P.〉). 숭고한 전쟁영웅을 그리려는 작품도 종종 나오지만 큰 히트를 치지는 못한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시민’이 아니라 ‘피해자’이다.

드라마 〈D.P.〉에서 주인공은 숨진 탈영병을 두고 “군대에 안 왔으면 탈영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요?”라고 묻는다. 얼핏 무의미해 보이는 이 물음을 누리꾼들은 최고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는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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