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더 세다".. 한반도 군비경쟁 불붙이는 북한 [박수찬의 軍]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상호 적대행위 중지와 단계적 군축 등을 담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을 함께 발표했다.
평화와 공동번영, 교류협력 활성화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던 판문점 선언이 발표된 지 3년이 흐른 지금, 한반도 정세는 그때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평화 대신 대결, 공동번영 대신 무력시위와 군비경쟁이 더욱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여섯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핵 억제력을 과시했던 북한은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공개하며 현대적인 군사력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도 최고 등급의 비밀이었던 미사일 전력을 공개하며 북한에 대한 전략적 억제능력을 과시했다.
3000t급 중형 잠수함에서 발사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한 내 주요 지하시설을 초토화할 고위력 탄도미사일, 항공모함도 격침시키는 초음속 순항미사일 등 정부와 군이 공식 확인을 거부했던 무기들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일 북한이 공개한 신형 지대공미사일, 지난달 28일과 11~12일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 순항미사일은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신형 지대공미사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미사일 하단부의 부스터다. 발사 초기 단계에서 엔진을 점화하는 대신 부스터를 사용, 비행거리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 SM-3 함대공미사일 등에서 쓰인다.
이는 북한의 방공망이 다층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북한판 S-300’ KN-06만 있었으나 사거리가 증대된 신형 미사일이 배치되면, 요격 기회가 두 번으로 늘어난다. 그만큼 적 미사일이나 항공기의 위협은 줄어든다.
한국군이 L-SAM과 천궁-Ⅱ를, 미군이 사드와 PAC-3를 만들어 다층 방공망을 만드는 것과 유사한 개념이다.
북한이 이번에 검증한 것은 탄도미사일에 장착된 활공체가 분리되어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급상승과 활강을 하며 비행경로를 바꾸는 극초음속 활공체다.
극초음속 활공체는 미사일방어체계를 뚫기 위해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는 무기다.
탄도미사일 등에 실려 발사돼 고도 30∼70㎞ 정도에서 분리된 후 성층권 내에서 비행하면서 마하 5 이상의 속도로 타격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중국은 둥펑(DF)-17, 러시아는 아반가르드, 미국은 AGM-183A ARRW를 개발했으며, 일본 등도 극초음속 기술 확보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북한이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뾰족한 탄두 부분에 여러 개의 날개가 장착되어 있는데, 최신 탄도미사일에서 종종 포착되는 기동탄두재진입체(MARV)일 가능성이 있다.
기동탄두재진입체는 탄두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지상 요격 시도를 회피하기 위해 활공이나 상승 등의 기동 비행을 하는 탄두다.
중국의 둥펑-17 극초음속 미사일처럼 탄두에 달린 날개로 목표지점까지 조종된다.
하지만 이동식발사차량(TEL)을 사용했는지, 지상 고정발사대에서 쐈을지는 사진상으로는 파악이 어렵다.
이번에 북한이 쏜 극초음속 미사일의 속도는 마하 3으로 추정되고 있다. 극초음속 기준인 마하 5에는 못미친다.
하지만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의 특성이 함께 드러나는 극초음속 미사일 비행특징이 포착된 만큼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초 기술은 이미 확보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기권 내에서 공기와의 마찰로 발생하는 2000도의 고온을 견디는 내열 설계와 복합재료, 대기권 진입 직후의 비행 공력 등은 이번 시험발사에서 어느 정도 검증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풀업기동(탄도미사일이 하강 중 재상승하는 것)을 하는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과 제3국에서 밀반입한 기술 등을 조합하면 내열 설계와 복합재료, 비행 공력 등은 구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남은 과제는 정밀도와 비행거리 등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상당한 기술적 난이도를 요구한다.
특히 고온, 고압에서도 작동 가능한 센서, 항법, 제어 시스템을 완성하는데 기술적 검증을 실시하려면 추가 시험발사가 불가피하다.
합참이 북한의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 초기 단계라고 평가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무인정찰기를 만들려면 무인기에 맞는 소형 터보팬 엔진이 필요하다. 북한은 순항미사일과 대함미사일을 개발하면서 소형 터보팬 엔진 기술을 확보했다. 관련 기술을 활용하면 무인정찰기에 필요한 엔진을 얻을 수 있다.
당 8차 대회에서 언급됐던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무인정찰기 개발이 현실화되면 남은 과제는 고체연료 ICBM이나 핵추진잠수함 등 핵 억제력 정도만 남는다. 북한이 당 8차 대회 결정 방침을 앞으로도 계속 밀어붙인다면, 북한의 전략적 억제력은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첨단 무기 개발과 과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자신들의 군비증강은 자위권이라고 강조하면서 남한의 억제력 확보는 비난하고 있다.
지난 1월 당 8차 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한국의 군사력 증강에 불쾌감을 나타나며 다양한 무기 개발을 선언했다.
소형화 경량화된 전술핵무기를 개발하고 초대형 핵탄두 생산을 계속하며, 1만5000㎞ 사정권 내 표적에 대한 명중률을 높이기로 했다. 핵잠수함과 극초음속 무기 개발도 공식화했다.
이같은 기조는 지난달 29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 위원장은 “국가방위력을 강화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최우선적 권리”라면서도 “남조선에서 우리 공화국을 견제한다는 구실 밑에 각종 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이 노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북한의 고압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는 한국이 군사력 증강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술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역풍’을 불러왔다. 북한이 군비를 늘리고 첨단 무기를 앞세운 무력시위를 지속하는데 한국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현역 군인들이 언급조차 꺼릴 정도로 높은 수준의 비밀을 지켰던 한국군 미사일 개발 현황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개한 것도 북한의 거듭된 내로남불식 비난과 첨단 무기 개발을 공표하는 무력시위의 나비 효과다.
그러자 북한도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카드로 맞섰다. 이른바 ‘장군멍군식’ 대응으로, 이는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북한이 게임 체인저 개발을 가속하면서 이를 공개해 무력을 과시한다면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촉발, 군사적 대치를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개발에 필요한 예산은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
북한이 추구하는 군사력 증강과 무력 대치는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이해당사자들을 패자로 만든다. 3년 전의 판문점 선언을 북한이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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