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시시각각 더 많은 사고력과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 때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1. 10.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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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나 가짜 뉴스 채널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들이 쉽고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전에 비해 시시각각 더 많은 사고력과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간은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말이 있다. 한정된 인지적 자원으로 세상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신경쓰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삶의 큰 부분을 습관, 고정관념, 편견, 인상, 동조 등에 기대 별 생각 없이 처리하고 정말 필요한 일에만 사고과정을 개입시킨다는 뜻이다. 

예컨대 사람들에게는 10년 후 또는 당장 내년에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환경에 큰 변화가 생긴다고 알린다(예, 10년 후 VS. 당장 내년부터 졸업 심사 과정이 변하는 상황). 즉 전자는 앞으로 다가올 변화가 현재 자신과 크게 상관이 없고 중요성이 덜한 반면, 후자에서는 변화 내용의 중요성이 높다.

이 때 사람들에게 변화와 관련된 좋거나 나쁜 여러 제안들을 검토하게 한다. 그렇게 하면 변화가 10 년 후라고 알린 조건에서는 변화 방향성에 대한 주장들을 비교적 대충 검토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반면 후자에서는, 즉 그 변화가 자신과 관련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경우에는 비로소 사고력을 동원해서 좋은 주장과 나쁜 주장을 걸러내는 모습이 나타난다. 정확한 판단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 조건에서는 제안의 '질'과 상관 없이 '양', 즉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한다면 그게 맞는 소리겠지' 정도의 안일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판단이 이렇게 적당히 안일하고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작동하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이면 (딱히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분명히 뭔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유행해서 자주 보이는 것이면 역시 뭔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등 굳이 사고력을 동원해서 깊이 따지고들기보다 인지적 단축키를 사용해서 대충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다. 또 실제로 모든 상황에서 최고의 판단을 내리려고 애쓰는 사람들보다 '적당히' 괜찮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머리도 덜 아프고 더 행복한 편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정하는 것들은 주로 “오늘 뭐 먹을까?”, “뭐 살까?” 같이 무엇을 골라도 크게 잘못되지 않는 것들이라서 판단 오류를 줄이겠다고 굳이 사고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지금처럼 각종 SNS나 가짜 뉴스 채널 등을 통해 잘못된 정보들이 유례없이 쉽고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전에 비해 시시각각 더 많은 사고력과 정확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나 백신에 대해 여기저기서 쉽게 볼 수 있는 정보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자신과 타인의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 아프게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 게 문제다. 이에 최근 조나 퀘트케 미국 피츠버그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 사고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라고 보았다. 지적 겸손은 자신의 믿음과 지식이 완벽하지 않으며 틀렸을 가능성을 인식하는 태도를 말한다. 지적 겸손의 반대는 책 한 권 또는 위키를 읽고 나서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우기거나 자신은 절대 틀릴 리 없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다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되겠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만큼 이를 보완하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양질의 증거를 찾아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의견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며 비과학적인 정보(일명 카더라)보다 과학적인 정보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을이는 편이다. 

퀘트케 교수팀은 사람들에게 물을 자주 마시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등의 가짜 뉴스를 보여준 후 기사 제목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 자세히 검토할 의향이 있는지, 기사 출처를 검토할 의향이 있는지, 상반되는 내용을 찾아볼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결과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해당 뉴스에 대해 더 많이 사고하고 사실 여부를 면밀히 따져 보고 싶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기사 링크를 주고 제목만 보는지 아니면 기사 전문을 클릭하는지 여부를 살펴봤을 때에도 지적 겸손도가 높은 사람들이 더 전문을 많이 살펴본 것으로 나타났다. 

내가 뭘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은 100% 정확하다고 생각할수록 더 가짜 뉴스에 취약하고 정확한 지식과 멀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반면 내가 뭘 모르고 있을 수 있고 내가 가진 정보 또한 빈약한 내용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판단력으로의 첫 걸음이라는 것.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처럼, 어쩌면 잘 안다고 요란하게 으스댈수록 점점 비어 가고 모른다고 생각할수록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속도 꽉 차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관련기사

Koetke, J., Schumann, K., & Porter, T. (2021). Intellectual Humility Predicts Scrutiny of COVID-19 Misinformation.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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