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 기후위기 구원투수될까

서동준 기자 2021. 10.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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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원자력 산업계에는 충격적인 두 가지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5월에 열린 한미정상회담 결과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만나 공동성명을 냈는데, 그중 중요하게 다뤄진 것이 ‘원전 공조’였다. 원전 사업 공동참여 등 해외 원전 시장 진출에 있어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원전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겠다는 탈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였다. 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가 임기 내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비춰봤을 때, 이번 원전 공조 발표는 큰 반전이었다. 

또 하나의 소식은 유럽에서 들려왔다. 올해 유럽연합(EU)의 녹색산업 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을 포함할 지 논의에 들어간 것이다. 2019년 EU는 기후변화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를 선정해 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여기에 포함될 에너지 산업은 올해 말 최종 결정될 예정인데 원자력 발전도 중대한 위해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검토 대상이 됐다. 이에 대한 근거는 올해 초 EU에 과학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공동연구센터(JRC)에서 발간한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원자력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인체 및 환경에 큰 해를 초래한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며 원자력 에너지의 친환경성을 주장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국가 역시 최근 원전 발전량을 유지 또는 확대할 계획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같은 반전이 나타난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기후변화가 거대한 글로벌 화두로 떠오르면서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원자력 발전에 재차 관심이 쏟아진 것이다. 다만,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원전 사고에 대한 우려가 여전한 것도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대안으로 ‘소형모듈원전(SMR)’을 거론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의 SMR 발전소 조감도. 뉴스케일파워 제공

SMR의 목표는 단 하나, 안전

SMR은 높이가 아파트 8층 정도인, 기존 원전에 비해 크기가 작은 원자로다. 지난해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미국 원전 기업 뉴스케일파워가 개발한 SMR에 대해 설계인증을 하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김용희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설계인증은 설계에서 주장하는 시스템의 성능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단계”라며 “이후 건설 허가 과정에서 일부 미해결된 사안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설계에서 주장하는 안전성을 규제기관이 확인하고 인정했다는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름부터 ‘소형’이라고 이라고 못박은 탓인지 흔히 SMR의 장점으로 소형화와 이에 따른 오지 건설 가능성 등이 먼저 꼽힌다. 하지만 애초에 SMR을 개발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안전이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우세해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유행하던 2000년, 미국 오리건주립대 핵물리학과 연구팀은 도리어 원자력 안전 분야에 혁신이 필요하다며 SMR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는 뉴스케일파워를 설립했다. 그러면서 아예 냉각수 펌프 같은 안전 시스템이 필요 없는 원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전을 위해 안전 시스템이 없는 원전을 개발한다니 언뜻 모순 같다. 이를 이해하려면 안전 시스템이 필요했던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기존 원전에서 안전 시스템은 원전이 정지됐을 경우 ‘붕괴열’을 식히기 위해 필요했다. 원전은 멈춘다고 그대로 돌처럼 차갑게 식는 게 아니다. 정지하기 전에 생성된 방사성 물질들이 안정된 원소로 변할 때까지 계속 붕괴하면서 붕괴열을 뿜어낸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원전 형태인 경수로 원전에서는 정지 직후에도 운전 중 출력의 6~7%에 해당하는 열이 방출된다. 이 붕괴열을 그대로 두면 수십 분 내로 핵연료가 녹아내린다. 그래서 안전 시스템으로 냉각수를 계속 순환해가며 식혀 줘야만 한다.

2011년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 같은 안전 시스템에도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당시 동일본 대지진으로 외부전력 공급이 차단되자 시나리오대로 발전소 내 비상 전력망이 가동됐다. 하지만 이어진 지진해일에 의해 비상 전력망까지 모두 침수되자 노심을 식힐 냉각수 펌프가 중단됐고, 결국 핵연료가 흘러나오며 방사능 유출이 시작됐다. 원전의 안전을 담보할 여러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지만, 그 시스템까지 멈추자 대형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이론적으로 붕괴열을 없앨 방법은 없다. 다만 붕괴열이 자연적으로 식게 할 방법은 있다. 원전을 아주 작게 만드는 것이다. 붕괴열은 운전 중 출력의 6~7%가 나오기 때문에, 애초에 운전 중 출력을 낮게 하면 붕괴열 역시 낮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열을 낮추기 위해서는 무언가 조치를 해야 하지만, 낮은 열은 가만히 둬도 쉽게 주변 기온과 평형을 이루며 낮아진다. 비유하자면, 아파트 한 채만 한 쇳덩이를 빨갛게 달궜다가 식히려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야 하지만, 작은 쇳덩이는 가만 둬도 금방 식는 것과 같다.

확실한 안전을 위해 또 하나 달성해야 할 과제가 있다. 원전의 모든 시스템을 하나의 원자로에 모두 담는 것이다. 기존 경수로 원전은 핵연료와 증기 발생기, 펌프가 별도로 나뉘어 있고, 서로 배관을 통해 연결돼 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해도 각각의 장치는 파괴되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배관은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떨어져 유사시 파괴돼 방사능이 유출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모든 장치를 한 원자로에 담아야 훨씬 안전하다.

사실 이런 원전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건 한국 연구팀이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97년 소형원자로 ‘스마트(SMART)’를 개발하기 시작해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다. 스마트는 안전 시스템을 모두 없애진 못했지만, 모든 장치를 한 원자로에 담았다. 전기 출력은 100MWe(메가와트일렉트릭〮1MWe는 100만W의 전기 출력)로, 당시 건설된 신월성 1호기의 10분의 1 수준이다. 김 교수는 “스마트 원자로 개발로 한국은 소형원자로 선두 주자로 꼽히게 됐다”며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전 세계 원자력 콘퍼런스에 초청받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17년 뉴스케일파워가 NRC에 설계인증을 신청하며 SMR 기술 리더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SMR 설계인증을 받으며 리더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공개된 설계에 따르면 뉴스케일파워의 SMR은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인 냉각수 펌프조차 없앴다. 원자로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도 제거했다.

뉴스케일파워의 핵심 기술은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원자로를 길게 만든 것이다. 원자로 하단의 핵연료와 상단의 증기 발생기의 높이 차이가 클수록 자연적인 열순환이 원활해진다. 두꺼운 콘크리트는 특수한 금속 외벽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원자로 전체를 물에 담궜다. 정상운전 시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지만, 사고가 발생해 운전이 중단되면 물에 의해 붕괴열이 자연스럽게 식는다. NRC에 따르면, 이 SMR의 방사능 유출 사고 발생률은 10억 년에 1번에 불과하다. 김 교수는 “이런 요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구현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다”며 “뉴스케일파워가 이를 구현함으로써 SMR 기술 선두로 우뚝 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GEH의 SMR.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전기 관련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과 히타치가 합작한 회사인 GEH의 소형모듈원전(SMR) BWRX-300의 모식도다. 뉴스케일파워의 SMR과 마찬가지로 물이 원자로 내에서 자연순환해 냉각시키며, 전기 펌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설계인증 절차를 밟고 있다. GEH 제공

SMR이 화력 발전소 대체 

에너지 발전의 종류는 다양하다. 기존의 화력, 원자력과 더불어 태양광, 풍력, 수소와 같은 신재생에너지원까지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화력은 탄소배출 문제로 퇴출당하는 추세고, 신재생에너지는 효율과 비용 문제로 아직 확실히 주 에너지원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화력 발전소가 미국에만 수천 개, 전 세계적으로 수만 개가 폐쇄될 예정”이라며 “SMR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SMR 개발에 투자한 빌 게이츠 빌앤멀린다게이츠 재단 이사장과 투자가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일화에서 그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2008년 빌 게이츠는 원전 기업 테라파워를 설립해 뉴스케일파워가 개발한 것보다 한발 더 나아간 고속로(고속중성자원자로) 형태의 SMR을 개발하고 있다. 이 SMR은 경수로 형태보다 연료 이용률도 더 높고, 무엇보다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워렌 버핏은 미국 와이오밍주에 위치한 화력 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다. 이 화력 발전소는 곧 폐쇄 예정인데, 여기에 빌 게이츠가 개발 중인 SMR을 건설하는 데 의기투합했다. 김 교수는 “와이오밍주에 화력 발전소 대신 SMR이 들어서게 되면 다른 지역에서도 화력 발전소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혁신형 소형모듈원전(SMR) 국회포럼 현장.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12년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SMR인 SMART를 개량해 경제성, 안전성이 대폭 향상된 ‘혁신형 SMR’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2028년까지 인허가 획득 후, 2030년 본격적으로 원전 수출시장에 뛰어든다는 목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하지만 SMR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가격 경쟁력이다. SMR이 안전성은 매우 높지만, 제조 비용은 다른 에너지 산업에 비해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뉴스케일파워의 SMR 한 기당 전기 출력은 77MWe다. 소규모 화력 발전소도 300MWe, 대규모는 1000MWe인 것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 뉴스케일파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12기의 SMR을 묶어 운용하는 해결책을 내놨다. 12기를 하나의 메인 컨트롤룸에서 관리하는 시스템도 지난해 설계인증에 포함돼 있다. 결국 화력 발전소 하나를 대체하기 위해 12기의 SMR을 만들어야 하다 보니 건설비가 더 많이 든다. 김 교수는 “이 문제는 SMR을 대량생산해 단가를 낮추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케일파워는 대량생산을 위한 파트너로 한국의 두산중공업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뉴스케일파워에 2019년 4400만 달러(약 505억 원), 올해 7월에는 6000만 달러(689억 원)를 투자했다.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한국에서 만들어진 SMR이 배를 타고 전 세계에 배달될 수 있고, 제조 기한도 한 기당 2~3년 정도로 짧아질 전망이다. 기존 대형 원전 건설은 현장에서 직접 건설이 이뤄져야 했으며, 빨라야 5년, 보통은 7~8년 정도의 긴 시간이 소요됐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있다. 뉴스케일파워의 SMR도 기존 원전과 마찬가지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야 한다. 다만 이 문제는 심지층처분장 건설을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심지층처분장은 지하 깊숙이 사용후핵연료를 넣고 오랜 기간 보관하는 방식이다. 가령 핀란드에서는 자국의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고자 심지층처분장인 ‘온칼로’를 2004년부터 건설 중이다. 내년 또는 내후년부터 지하 5km 지점에 지그재그 형태로 건설된 지하 터널 끝부터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기 시작해 2100년경 가득 차면 10만 년간 폐쇄할 예정이다. 인류에게 10만 년은 매우 긴 시간이므로, 누구나 건드리면 안 되는 장소임을 인지할 수 있는 표식도 고심 중이다. 스웨덴, 프랑스, 중국, 미국 등 국가에서도 이 같은 심지층처분장 건설이 논의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지난해 설계인증을 받은 데 이어, 2023년 건설·운영 허가를 신청하고 2025년까지 허가 취득 후 2029년 상업 운전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제9차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혁신형 SMR 개발을 공식화하고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주축으로 SMR 기술 개발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올해 4월에는 여야 양당 의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혁신형 SMR 국회포럼’도 출범하며 정계도 차세대 에너지원 개발에 합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뉴스케일파워의 기술을 그대로 따라 할 게 아니라 이제는 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라며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비를 더 낮추는 등 다른 분야의 기술을 접목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준 기자 bi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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