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제국의 무덤이 된 지질학 요새, 아프가니스탄

조혜인 기자 2021. 10.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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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최대 높이 7000m를 웃도는 높고 가파른 산맥이 이어지면서 1200km의 거대한 자연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전체 영토의 90%가량이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 자연 장벽은 외세를 막는 데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농경지와 주거지 등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적어 거주지로는 적당하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 7월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의 미군 주둔 임무를 8월 31일로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2001년 알 카에다의 9.11 테러 사건으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하며 벌인 전쟁이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미군의 철수가 채 끝나기도 전에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며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난 20년 동안 활발히 활동해 온 과학자와 여성에 대한 억압도 시작됐다. 

아프간은 유라시아 대륙 중앙에 위치해 수많은 강대국의 침략을 겪어 왔으나 험준한 산악 지대 때문에 어떤 제국도 쉽게 점령하지 못한 모순된 역사를 갖고 있다. 2010년에는 아프간 땅이 천연자원의 보고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제 사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구세계의 절반은 시리아 알레포로, 나머지 절반은 아프가니스탄(아프간) 바그람으로 연결된다.”
영국 역사학자 아널드 J. 토인비는 아프간을 ‘문명사의 교차로’라고 불렀다. 아프간은 유라시아 대륙 중앙에 있는 내륙 국가로, 비행기가 개발되기 전 과거에는 아프간을 지나지 않고서는 동서로 횡단할 수 없었다. 현재 아프간은 이란,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중국의 신장 위구르 지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프간은 전쟁을 치르려는 정복자들과 물건을 판매하려는 상인들의 교차로였다. 그렇게 아프간의 인종과 종교 문화는 다양성으로 채워졌다. 현재는 서로 언어와 문화가 다른 14개의 민족이 살고 있다. 지리적 특성에서 탄생한 다양성은 아프간의 문화를 독특하고 다채롭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내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제국주의의 무덤이 된 땅

지리적 위치는 내전뿐만 아니라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아프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은 물론 그리스 마케도니아, 몽골제국, 영국, 냉전 시기의 소련 등이 침공했으나 모두 아프간에 패했다. 아프간에는 제국주의의 무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군사력이 월등히 부족한 국가에서 이들이 강대국의 침공을 막을 수 있던 데는 지형적 특성이 한몫했다.

아프간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거대한 힌두쿠시산맥이 이어진다. 최대 높이 7000m를 웃도는 높고 가파른 산맥이 파키스탄까지 이어지면서 1200km의 거대한 자연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더군다나 하루에 10~37℃를 오가는 일교차와 여름엔 덥고 건조하고 겨울엔 추운 혹독한 기후 조건은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로 작용했다. 이 자연 장벽은 외세를 막는 데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아프간 토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농경지와 주거지를 매우 희소하게 만들어 이곳에서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었다. 아프간 토지 면적은 65만 2230km²로 유럽에 있는 프랑스 본토 면적(54만 3940km²)보다도 넓지만, 농경지는 12.1%뿐이다. 나머지 87.9%는 농사는커녕 사람이 살기에도 척박하고 험준한 산악 지대다. 면적의 절반 이상이 5000m 이상의 높이의 가파른 산이다.

아프간의 지질은 약 25억 년 전 원생 누대 시절부터 지각판이 충돌하면서 생긴 수많은 암석이 혼합된 상태로 구성돼 있다. 수도인 카불의 지하 암석은 선캄브리아대 초기에 생성된 암석 조각으로 구성돼 있고, 땅 위에 생긴 대규모의 습곡산맥은 이후 두 차례 발생한 지각변동의 흔적이다. doi: 10.1080/00206814.2021.1904297

아프가니스탄 땅속에 매장된 광물. 아프가니스탄(아프간) 광산 및 석유부가 발표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구리, 금,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보크사이트, 석탄, 철광석, 희토류, 리튬, 크롬, 납, 아연, 보석, 활석, 황, 석회 등의 자원이 풍부하며 이는 1000조 원이 넘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산했다. 표시된 지역(주황색 사각형)은 자원 개발 허가가 난 지역이다. 아래는 철, 구리, 금, 희토류, 연료, 보석이 각각 매장돼 있는 지역과 매장량 추정치다. 과학동아DB

1000조 이상의 가치를 갖는 보물창고

2001년 9월 11일 여객기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에 부딪히며 110층짜리 빌딩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이슬람 테러단체 알 카에다가 일으킨 테러 공격이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라는 요구를 거부한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아프간에 주둔한 미군은 지질학자들과 함께 2004년부터 2010년까지 항공기와 지하 광물 3차원 판독기를 동원해 아프간 전역에 매장된 광물 자원을 조사했다. 그 결과 아프간 땅 밑 지하에 구리, 금,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보크사이트, 석탄, 철광석 등 지하자원과 희귀금속이 매장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의 가치는 1000조 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 국방부는 내부 보고서에 “아프간은 리튬의 사우디(석유 최대 매장 국가)”라는 표현을 써서 아프간 지하에 대규모 리튬이 매장돼 있음을 암시했다. 리튬은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 쓰이는 리튬이온전지를 만들 때 필수 자원이다. 최근 기후위기 문제로 내연기관차 대신 전기차가 각광 받으면서 전기차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핵심 금속으로 더욱 쓰임새가 많아졌다. 

아프간 광산 및 석유부가 발표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에 매장돼 있는 철광석은 약 22억 t(톤)이다. 이는 현재 시장 가치로 400조 원을 뛰어넘는다. 구리 자원은 3000만 t에 이르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매장지에도 수천만 t의 구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도 약 2700kg가량 매장돼 있으며 알루미늄, 주석, 납, 아연 등이 여러 지역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 비유되는 희토류 광물도 약 140만 t이 매장돼 있다. 희토류는 반도체, 초전도체, 디스플레이, 전기모터 등 첨단 산업과 군용 장비 제작에 쓰이는 원료다. 희토류는 란타넘, 루테튬 등 주기율표 란타넘족에 속하는 원소 15종과 스칸듐, 이트륨을 포함한 17개 원소를 일컫는다.

화석연료도 풍부하다. 2006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이 아프간 북부 지역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에는 석유 15억 9600만 bbl(배럴·1배럴은 158.9L), 천연가스 4440억 m3, 액화가스 5억 6200만 bbl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프간 입장에서 지하자원만큼 귀한 또다른 보물은 양귀비다. 양귀비는 마약의 일종인 아편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이며, 아편으로는 또 다른 마약인 헤로인을 합성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전 세계 아편과 헤로인의 약 80%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격의 대상이 된 과학자와 여성

연합뉴스 제공

긴 시간 끊임없는 내전으로 아프간의 교육 시스템은 붕괴된 상태다. 특히 탈레반이 처음 집권했던 1996~2001년에는 탈레반이 내세우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은 교육 기회와 경제활동을 박탈당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정권이 바뀌며 교육 기관이 점차 정비되기 시작했다. 이공계 출신 과학자들의 연구 기반도 다져 나갔다. 여성의 교육 기회도 생겼다. 2002년에는 카불대는 남녀 학생 모두에게 수업을 열었고, 2006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아메리칸대가 설립돼 영어 교육을 했다. 아프간 고등 교육 기관은 100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20년 동안 과학자와 여성 인재들이 육성됐다. 유네스코(UNESCO)에서 발표한 ‘UNESCO 과학보고서 2021’에 따르면 국제 학술 테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에 등재된 아프간 연간 과학 분야 논문 수는 2011년 71편에서 2019년 285편으로 늘었다. 과학 선진국에 비하면 적은 수지만, 성장세는 뚜렷했다. 특히 여성 학생의 공학 분야 진출 사례가 나오는 등 주목할 변화가 있었다. 아프간 최초로 여학생으로만 이뤄진 로봇공학팀 ‘아프간 드리머스’는 2017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 로봇공학 올림픽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란지나 하미디가 아프간 정부 최초로 여성 교육부 장관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아프간을 탈출했거나, 탈출하고 있거나, 탈출을 준비 중이다. 미국 등 외국과 공동 연구를 했던 과학자들이 박해받을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8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탈레반 집권으로 아프간 과학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탈레반은 반과학, 반교육 가치관을 내세우며 국제공동연구를 진행한 과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2010년 카불에 설립된 아빈세나대를 졸업했다고 밝힌 한 여성 엔지니어는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아프간에서 여성들이 성취한 모든 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SAR(scholars at risk network·학문의 자유를 지원하고 전 세계 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조직된 미국 기반 국제 학술 네트워크)를 비롯해 여러 단체가 아프간의 학생과 학자들을 구출하고 있다. 아프간 과학자와 협력했던 연구자들은 아프간 연구자의 이름을 지우는 등 신변 보호에 힘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프간의 여성들은 피하고만 있지 않다. 폭압에 맞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자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 연대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교육받고 일할 기회를 요구하는 등 여성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대륙 : 아시아

전체 면적  : 65만 2230km²

국경 길이  : 5529km

농작 가능한 관개지  : 1만 9933km²

국경 인접 국가  : 중국 76km, 이란 936km 파키스탄 2430km 타지키스탄 1206km 투르크메니스탄 744km 우즈베키스탄 137km

지형  : 대부분 험준한 산악 지대 북쪽과 남서쪽에 평원

최고점 : 나우샤크(7485m)

※관련기사

과학동아 10월호,  제국의 무덤이 된 지질학 요새, 아프가니스탄

[조혜인 기자 heyn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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