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파란만장 성남

김홍수 논설위원 2021. 10. 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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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서울시는 경기 광주군 중부면(지금의 성남) 일대에 철거민을 위한 주택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1년 뒤 ‘실어다가 들이붓는’ 비인간적 이주 대책이 시행됐다. 2년 만에 인구가 14만명으로 늘어났고 누적됐던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고건 전 총리) 투기꾼들에게 분양권을 뺏기듯 했고 ‘일터 제공’ 약속도 지켜지지 않자 철거민 수만 명이 행정 관청을 점거하고 경찰차를 불태웠다. 이후 성남은 빈민 운동의 메카가 됐다.

만물상 삽입 일러스트

▶이 ‘광주 대단지 사건’에 놀란 정부는 일터 제공을 위해 서둘러 성남에 산업 공단을 조성했다. 1974년 1,2공단, 1976년 3공단을 준공했다. 세 공단에 서울 성수동에 있던 공장들이 대거 이전했다. 이번엔 노동운동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성남은 1980년대 초반 서울 구로구, 인천과 함께 수도권 노동운동 3대 거점으로 부상했다. 당시 노동운동을 주도한 성남노련은 나중에 민주노총 ‘경기동부’ 조직으로 재편된다. 내란 선동으로 해산된 통진당의 핵심이 경기동부다.

▶광주 대단지 사건에 앞서 1960년대 성남시에선 재향군인 단체인 ‘모란 개척단’이 도시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모란 개척단은 사라졌지만 평양이 고향인 사람이 평양 모란봉 이름을 따 만들었다는 재래시장 ‘모란시장’은 살아남았다. 조폭인 성남 국제마피아파는 모란시장을 근거지 삼아 세력을 키웠다고 한다.

▶1990년대 서울 강남 주택난으로 분당 신도시가 개발됐다. 이후 성남은 구시가지와 신도시 분당이 동거하는 ‘이중(二重) 도시’가 됐다. 구시가지 쪽에선 분당처럼 발전하려는 욕구가 강했다. 2010년 민주당 후보로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변호사는 당시 민노당의 ‘1공단 공원화’ 요구를 수용해 1호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1공단과 대장동 택지를 하나로 묶은 결합 개발을 추진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바로 그 대장동이다.

▶역대 성남시장 역사도 파란만장이다. 1995년 이후 민선 성남시장 3명이 잇따라 뇌물수수로 구속됐다. 노동운동권 출신 은수미 현 성남시장도 국제마피아파 조폭 출신 인사에게 1년여간 차량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반해 성남시장 출신 이재명씨는 경기지사가 되고 여권 1위 대선 주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 지사도 변호사 시절 국제마피아파 조직원 2명을 변호해 구설에 올랐고, 이번에 대장동 의혹으로 위기다. 이제 성남시는 과거와는 상전벽해로 달라졌다. 첨단 IT 산업의 메카 ‘판교 테크노밸리’를 품고 있다. 성남시가 파란만장을 넘어 최고 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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