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 위로 솟구친 아파트.. 세계유산 조선왕릉이 위험하다

허윤희 기자 2021. 10.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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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문화재 보호냐 재산권이냐
불붙은 검단 신도시 가보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능침구역에서 바라본 전경. 탁 트여야 할 전망 대신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 단지가 삐죽 솟아 있다. 계양산은 완전히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한강뷰 아파트는 들어봤어도 왕릉뷰 아파트라니 기가 찹니다. 불법으로 지었으니 당연히 철거해야지요.”

“죽은 왕 무덤이 산 사람보다 중요합니까? 당장 내년 입주를 앞두고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어요?”

조선왕릉 앞에 건설 중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주인공은 인천 서구 검단 신도시에 건축 중인 44동, 3400여 가구의 단지다. 내년 6~9월 입주를 앞뒀다. 문제는 이 단지 근처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인 ‘김포 장릉(章陵)’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현행법상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높이 20m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사전에 문화재청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건설사 3곳은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이를 뒤늦게 파악하고, 지난달 6일 아파트 건설사인 대방건설·대광건영·금성백조 3곳을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문화재 보호’와 ‘입주민의 재산권’이 맞붙은 초유의 사태다.

'김포 장릉' 능침 구역의 두 봉분 사이에서 바라본 전경. 탁 트여야 할 전망 대신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 단지가 삐죽 솟아 있다. 계양산은 완전히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탁 트인 전망 대신 솟아오른 아파트

지난달 27일 찾아간 김포 장릉 현장. 장릉산 중턱에 자리한 왕릉의 능침 구역에 올라 정면을 바라보니, 탁 트여야 할 전망 대신 공사 중인 고층 아파트 단지가 삐죽 솟아 있었다. 장릉 남단에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까지 직선 거리는 불과 약 450m. 정면으로 높게 아파트가 덮여 있어 체감 거리는 이보다 더 짧게 느껴진다.

김포 장릉은 조선 선조의 다섯째 아들이자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1578~1626)의 무덤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이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인조의 무덤(파주 장릉)과 부모의 무덤(김포 장릉), 계양산이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조경이 특징. 김포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유네스코는 조선왕릉이 ▲유교사상과 토착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葬墓) 문화 공간이고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 배치를 통해 제례를 위한 경건한 장소가 창조됐으며 ▲조선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신축 중인 아파트 단지가 왕릉 조망을 해치게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허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규모 공동주택을 무단으로 지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앞서 장릉 쪽으로 200m 더 가까운 곳에 지은 ‘장릉삼성쉐르빌’ 아파트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2002년 준공했고, 최대한 왕릉을 가리지 않도록 한쪽 방향으로 치우치도록 지었다.

◇”왕릉뷰 아파트가 웬말” vs “산 사람이 먼저”

문제는 3개 건설사 모두 이미 아파트 꼭대기층(20~25층)까지 골조 공사를 끝내고 내부 마감 작업 중이라는 것.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문화재청은 “신고를 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전국의 모든 문화재 현장을 시시각각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이 ‘불법 현장’을 발견한 것도 우연에 가깝다. 지난 5월 김포 장릉 인근에 현상 변경 신고가 들어온 다른 현장을 살피러 갔다가 이 단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에 저촉되는 19동에 대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고, 건설사들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30일 서울행정법원 결정에 따라 현재 12동의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인천 검단 신도시에 건축 중인 아파트 단지.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건설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2014년 땅을 인수할 때 당시 소유주였던 인천도시공사가 김포시로부터 택지 개발에 대한 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받았고, 2019년에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를 거쳐 착공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7년 1월 문화재보호법 시행령 개정으로 문화재 보존지역 500m 안에 짓는 높이 20m 이상 건축물은 문화재청이 개별 심의한다고 고시한 바 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교수는 “문화재보호법 제35조에 따라 왕릉 인근에 건축물을 지을 때는 행위자(건설사)가 직접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건설사들이 이 기본 사항을 몰랐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개발 이익에 비해 문화재 가치는 뒷전에 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선 논란이 뜨겁다.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1일 오후 기준 1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문화재청 게시판에는 “아파트를 그대로 놔두고 책임을 묻지 않으면 나쁜 선례로 남아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할 것” “후손에게 남겨줘야 할 경관을 건설사 이기주의 때문에 망가뜨릴 수는 없다”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죽은 왕의 무덤이 산 사람에 우선하는 것이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해당 아파트 입주 예정자인 김모씨는 “지금 전세로 살고 있고 내년 입주에 맞춰 이사를 해야 하는데 입주가 늦어지면 어떻게 피해를 보상할 건가. 문화재 때문에 입주민 권리가 침해돼도 된다는 건지 묻고싶다”고 호소했다.

인천 검단 신도시에 건축 중인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조선왕릉이 위험하다

장릉뿐 아니다. 조선왕릉 곳곳이 대규모 아파트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책 사업으로 조선왕릉 근처를 대규모 아파트 부지로 낙점하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2018년엔 정부가 경기도 고양 서오릉(西五陵) 주변을 3만8000가구가 들어설 창릉 신도시로 지정했다. 서오릉은 창릉, 익릉, 경릉, 홍릉, 명릉 등 5개의 조선왕릉을 통칭하는 말. 일부 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서오릉 반경 500m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정 높이 이상의 건축물 조성을 위해선 문화재청 심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가 아파트 1만 가구 공급 계획을 발표한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바로 앞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 반발로 지난 8월 공급 규모를 6800가구로 축소했지만, 태릉·강릉 앞에 최고 35층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경관 훼손은 불 보듯 뻔하다.

노원구 주민들로 구성된 ‘초록 태릉을 지키는 시민들’은 지난해 9월 유네스코에 정부의 태릉 주변 개발 계획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발송했고, 유네스코는 같은 해 11월 “이 사안과 관계된 국제기구들과 함께 해당 문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회신했다. 이들은 “태·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당시 태릉선수촌 이전을 포함한 주변 원형 복원이 등재 조건이었다”며 “5000억원을 들여 선수촌을 진천으로 이전해 놓고, 아파트 6800가구를 짓겠다는 것은 황당한 처사”라고 했다.

조선왕릉 조경 전문가인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는 “태릉골프장 안에는 태릉·강릉의 주요 시설인 연지(연못)가 포함돼 있다. 우선 연지를 발굴해 복원해야 하고, 태·강릉 능침에서 봤을 때 전면 경관을 분석해서 경관 계획부터 철저히 세우는 게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성급하게 개발 계획부터 발표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조선왕릉 훼손이 계속되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 영국의 도시 리버풀이 등재 취소의 불명예를 겪었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리버풀, 해양산업 도시’를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하면서 “리버풀의 세계유산 지정 지역 안팎에서 이뤄진 개발로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전달하는 속성이 돌이킬 수 없이 손실됐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포 장릉 봉분 위에서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정면에 높이 솟은 아파트가 보인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문화재냐 개발이냐, 첨예한 갈등

문화재 보존과 재산권의 충돌이 처음은 아니다. 20년 넘게 입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풍납토성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 1997년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풍납토성의 정밀 실측을 하다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토기와 기와 조각을 발견하면서 백제 왕궁 유적의 실체가 밝혀졌다. 문화재 발굴사(史)를 바꿀 발견이었지만, 재건축 조합원들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이 백제 왕성이라고 대서특필되면서 재산권 행사에 방해를 받게 된 것이다. 이형구 교수는 “풍납토성 내부 보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온갖 고초를 겪었다. ‘서울에 무슨 백제 유적이 있다고 그러느냐’는 힐난부터 욕설과 폭언, 감금, 폭행까지 당했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11일까지 건설사 3곳으로부터 개선안을 제출받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열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마땅한 개선안을 가져오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원상복구(철거)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향후 법적 공방이 예상되면서 입주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권구 계명대 교수는 “재산권 침해에 대한 우려로 불법 건축물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태 해결이 앞으로 조선왕릉을 비롯한 문화재 보호 문제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희권 교수는 “무엇보다 입주민들이 받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건설사들이 입주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안을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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