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 몰래 먹던 그는 어떻게 美 '음식의 신'이 됐나

곽아람 기자 2021. 10.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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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맛 모모푸쿠

데이비드 장 지음|이용재 옮김|푸른숲|400쪽|1만8000원

이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는 늘 자신의 ‘뿌리’가 부끄러웠다. 어머니의 김치찌개가 팟 로스트(소고기를 채소와 함께 오래 익힌 음식)보다 더 좋았지만, 그 사실을 백인들에게 숨겼다. “나는 소위 ‘트윙키(twinkie)’다.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아시아계 미국인 말이다.” 이북 출신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고 엄격했다. 수레 바퀴에 다리가 끼여 우는 일곱 살 아들에게 “심약하다”며 야단을 쳤다. 며칠을 끌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정강이뼈가 부러져 있었다. 그 사건이 오랫동안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 ‘음식의 신(神)’이라 불리는 셰프 데이비드 장(44·한국명 장석호)의 이야기다.

데이비드 장은 2004년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연 자그마한 누들 바 ‘모모푸쿠(桃福·lucky peach)’로 평단과 미식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스타 셰프’ 반열에 올랐다.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인 제임스 비어드 상을 네 차례 수상했다. 2008년 연 파인다이닝 ‘코’는 미슐랭 별 두 개를 받았다. 모모푸쿠는 뉴욕·LA·라스베이거스·토론토 등에 20여 개 식당·카페·바 등을 운영하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장은 넷플릭스 다큐 ‘어글리 딜리셔스’ 등 각종 방송에 출연하며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까지 누리고 있다.

장의 이 회고록은 그러나 자신감 넘치는 성공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서문에서 말한다. “나는 정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책은 조울증에 시달리는 ‘눈부신 외톨이’가 신화 속 시시포스처럼 굴러떨어지는 바윗돌을 다시 밀어올리길 반복하며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맛보는 과정을 가감 없이 그린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나는 마침내 내 안에 불굴의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카뮈의 말이,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마다 그를 다시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

데이비드 장은“셰프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존중하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은 데이비드 장이 출연한 넷플릭스 다큐‘어글리 딜리셔스’중 한 장면. /넷플릭스

한때 ‘골프 신동’으로 불렸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평범한 회사원이 된 장은 “주방 일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진짜, 정직한 일이기 때문에” 뉴욕의 요리학교에 진학한다. 쟁쟁한 셰프들 밑에서 수련했지만 우울증이 발목을 잡는다. 절망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기에 삶을 개선하려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떠올린다. “우울증을 극복하지도 못하고 파인다이닝 세계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적어도 나 자신을 위한 요리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모모푸쿠는 그렇게 탄생했다. 부끄럽기만 했던 ‘뿌리’가 답이 됐다. ‘간편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표방하는 모모푸쿠의 철학은 “아시아의 기차역, 쇼핑몰, 상가에서 먹는 음식이 뉴욕의 고급 레스토랑 음식보다 우월하다”는 그의 확신에 근거한다. 일본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던 시절 맛본 라멘, 어머니의 김치 레시피 등 아시아계로서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미국인 대부분이 누들 바가 뭔지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누들바를 꾸려나가면서 아시아인은 라멘을 국물까지 먹는다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백인은 면만 먹었다. 따라서 라멘을 미지근하게 내면 아시아인은 불평했다. 반면 너무 뜨겁게 내면 백인은 국물이 식을 때를 기다리다가 면이 불고 나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요리사는 손님과 끝나지 않을 춤을 추며 장단을 맞춰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던 식당은 ‘손님에게 내고 싶은 음식’을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음식’처럼 만들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안정 궤도에 들어선다. 보쌈과 토르티야 등 각종 쌈 요리를 기반으로 2006년 낸 ‘모모푸쿠 쌈 바’에서도 이 원칙은 적용됐다. “핵심은 우리가 다른 셰프들이 일을 끝내고 와서 먹을 만한 심야 메뉴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 셰프는 손님들에게 자신이 먹는 것과 다른 음식을 냈다. 우리는 가게 문을 닫은 다음에 훨씬 더 투박하고 양념을 많이 쓰고 맛이 센 음식을 먹었다.”

자기계발서 류(類)를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가는 제 상처를 도려내어 독자에게 들이미는 셰프의 칼질에 기겁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책의 매력은 지나치다 싶은 그 솔직함에 있다. 인생의 상처인 것만 같았던 아버지는 아들이 식당을 차리겠다 했을 때 선뜻 10만 달러를 융통해준다. 책은 이렇게 끝난다. “형제들은 내가 아버지와 판박이라고 말한다.” 원제 Eat A P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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