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숫자는 말한다, 세상이 더 좋아지고 있다고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 10. 2. 03:03 수정 2021. 10. 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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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계몽(啓蒙)'이란 철 지난 단어처럼 들린다.

17, 18세기 유럽의 계몽사상가들은 이성과 합리의 힘으로 인류 사회가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2년)에서 인류 사회의 폭력이 계속 감소해 왔음을 밝힌 저자는 여전히 계몽과 이성에 대해 강한 신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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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커 지음·김한영 옮김/864쪽·5만 원·사이언스북스
저자는 인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인간의 이성으로 인류의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계몽주의는 그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오늘날 ‘계몽(啓蒙)’이란 철 지난 단어처럼 들린다. 17, 18세기 유럽의 계몽사상가들은 이성과 합리의 힘으로 인류 사회가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을 파괴했고, 인류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지구 전체를 겨누고 있다. 기후위기가 심각한 경보음을 울리지만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이런 시대에 인간 이성에 기대 계몽을 논하는가.

전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2012년)에서 인류 사회의 폭력이 계속 감소해 왔음을 밝힌 저자는 여전히 계몽과 이성에 대해 강한 신뢰를 펼친다. 계몽이 인기 없는 관념이 됐다는 점은 그의 눈에도 분명하다. 2010년대 출현한 대중운동들은 “세계주의가 아니라 부족주의를 내걸고,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위주의를 칭송하며, 전문가를 경멸하고 목가적인 과거를 그리워한다”.

이 공격들로부터 계몽을 지키기 위해 그는 ‘21세기의 개념으로’ 계몽주의 이념을 다시 쓰고자 한다. 오늘날의 방식인 데이터를 동원하는 것이다.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부는 인간이 이전 시대에 비해 얼마나 계몽의 혜택을 누리는지 데이터를 통해 드러낸다. 여러 부분에서 한스 로슬링의 역저 ‘팩트풀니스’(2018년)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에 걸쳐 기대수명과 복지 지출, 민주 정부의 수, 성적·인종적 평등, 교육·지식의 보급은 극적으로 확대됐으며 부(富)의 팽창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소평가돼 왔다.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들이 비싸고 열악한 제품을 대체해온 것은 생산 통계에 드러나지도 않는다. 반면 영양실조와 발육 부진, 영아·산모 사망률, 오염물질 배출, 전쟁 희생자, 사고 및 범죄 희생자, 노동시간은 극적으로 줄었다. 환경파괴의 대명사인 아마존 벌채 속도조차 1990년대를 정점으로 줄었다. 테러리즘은 이 시대 가장 큰 공포이지만 사상자 수는 다른 범죄에 비해 미미하다. 이 모든 진보들을 실제 데이터로 일일이 설명한다.

그럼에도 계몽과 이성에 대한 믿음은 이 세계에 안전하게 자리 잡지 못했다. 저자가 보기에 계몽주의의 적들은 ‘세계가 점점 더 깊이 위기에 빠져들고 있으므로 근대적(계몽주의적) 제도들을 파멸시켜야 세계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다’고 선동한다. 열린 세계 대신 민족애로 포장한 부족주의를, 민주주의 대신 권위주의를 칭송하며 전문가를 경멸하고 계몽 이전의 목가적인 과거를 이상향으로 선전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로 상징되는 포퓰리즘은 정점에 도달했고 차차 소멸의 길에 들어설 것으로 진단한다. 민주주의와 자유, 부와 복지는 상승세에 올라탔으며 이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비관주의는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는 불행에 관심을 갖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불행은 대부분 세계가 그만큼 몰락한 징표가 아니라 우리의 기준이 상승한 징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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