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근의 묵언] 위험한 홍준표, 위험한 언론

김택근 시인·작가 2021. 10.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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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홍준표 의원이 TV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94년도에 클린턴이 영변에 북폭(北爆)을 하려고 했을 때 YS(김영삼 대통령)가 막았다. 안 막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북핵이 발전됐겠나? 북핵을 만들지 못했겠지. 그만큼 대통령 자리는 순간적 결심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

김택근 시인·작가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다시 김영삼을 소환했다. “클린턴 정부가 영변 핵시설 폭격을 하려고 했을 때 YS는 이를 극력 저지하고 KEDO(북한의 경수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 컨소시엄)로 돌파하려 했으나 그건 오판이었다. 그때 영변 핵시설 북폭이 있었다면 북한은 핵개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대통령의 결단을 들먹였다.

홍 후보는 북폭으로 북핵을 제거하지 못했다고 YS를 탓했다. 여기에 다른 후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한반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자 남북, 북·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은 무력 응징을 검토했다. 대북 강경책으로 북한을 압박했던 김영삼 정부는 막상 전쟁위기에 직면하자 당황했다.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다. 이때 정계를 은퇴한 야인 김대중(DJ)이 나섰다.

3김 시대 ‘최후의 승자’를 꿈꾸었던 YS는 DJ의 정계복귀를 극도로 경계했다. 전담반을 두고 감시했다. 그럼에도 DJ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전쟁만은 막아야 했다. 1994년 5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대한 충언’이란 연설을 했다. 미국 행정부와 언론을 향한 조언이며 호소였다. DJ는 북핵 문제의 ‘일괄 타결’을 주장했다.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과의 경제협력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신뢰받는 인물을 대북 특사로 보낼 것을 제안했다. 그러자 특사로 누가 적합한 인물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DJ는 서슴없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미국의 잇단 경고에도 북한은 핵 연료봉 추출을 강행했다. 이에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핵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지’는 핵시설에 대한 공격이고 곧 전쟁이었다. 페리는 클린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안보회의에 3단계 작전계획을 상정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 3개월 안에 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명, 민간인 100만명이 희생될 것으로 예측했다. 펜타곤의 계산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그때 전쟁의 먹구름을 헤치고 카터가 평양으로 날아갔다. 카터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선물을 안고 판문점을 넘어왔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정상회담은 무산되었지만 한반도는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당시 DJ의 이런 막후 활동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DJ는 자랑하지 않았다. 안보는 ‘최선’이지 ‘과시’가 아니었다. 훗날 카터는 김대중에게 경의를 표했다. “당신이 나를 북에 가도록 했다. 내가 가지 않은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면 한반도에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지 모른다.”

전쟁이 터졌다면 한반도는 어찌 되었을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하다. 만에 하나, 공학자 출신 페리의 구상대로 핵시설만 정밀 타격해서 북한 정권을 붕괴시켰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아마도 북의 동포들이 남으로 밀려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이를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평화통일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27년 전 전쟁이 날 뻔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위기를 넘겼다. 당시 대북정책은 실패했지만 김영삼은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지도자의 결단이 나라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홍 후보의 말은 맞다. 그래서 지도자들의 현명한 결단으로 ‘전쟁만은 막으며’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다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줄 새로운 지도자를 뽑으려 한다.

‘위험한 발언’에도 언론은 그저 덤덤하다. 후보들의 상식 이하의 자질과 상식 밖의 언동에 질려버렸는지, 날마다 불꽃이 튀는 다른 이슈에 묻힌 것인지, 정확한 실상을 모르는 건지…. 언론의 방관과 무관심도 위험해 보인다.

선거판이 기이하고 무섭다. 눈높이를 낮춰도 인물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아무래도 대통령제가 수명을 다한 것 같다. 중간에라도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안전판이 필요해 보인다. 5년은 너무 길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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