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무전기 압수 거부한 선양 미국 총영사 워드 추방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96〉
신임 선양시장은 워드와 우호적 대화
제시간에 나타난 워드를 군관회 부주임 겸 위수사령관 우슈촨(伍修權·오수권)이 상대했다. “우리가 보낸 문건 받았으리라 믿는다. 지금 선양은 군사관제 기간이다. 용도와 소속을 막론하고 무전기는 사용할 수 없다. 준행(遵行)하기 바란다.” 워드도 할 말이 있었다. “영사관의 존재를 훼손시킬 수 없다. 무전시설이 없으면 대사관은 물론, 국무부와 연락할 방법이 없다. 선양에 거주하는 미국 교민의 보호가 불가능하다.” 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에 보낼 문건이 있으면 내게 보내라. 군관회의 비준을 거쳐 신화사(新華社)가 발송해 주면 된다.” 워드도 지지 않았다. “무전시설은 미국 정부 재산이다. 군관회에 보관시키려면 국무부의 비준을 거쳐야 한다.” 논쟁이 길어지자 우가 자리를 뜨며 한마디 했다. “정 못하겠으면 우리가 사람을 파견하겠다.” 영사관으로 돌아온 워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만 했다. 불필요한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에게 불평을 늘어놨다. “레닌의 명언처럼, 모든 일은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선양은 해방구다. 국민당 통치 지역이 아니다. 국민당이 미국에게 준 권리나 권한은 우리와 상관이 없다.” 저우는 마오의 의견대로 선양에 보낼 답전을 작성했다. 자정 무렵 초고를 본 마오는 몇 자 손을 봤다. 앞머리에 마오(毛), 류(劉), 주(朱), 런(任), 네 자를 쓰고 毛에 동그라미를 둘렀다. 류샤오치(劉少奇·유소기), 주더(朱德·주덕), 런비스(任弼時·임필시) 등의 의견을 구한다는 의미였다.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미 영사관은 무전기를 보관하겠다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다. 미국은 양손잡이다. 우리를 영사관으로 몰고, 우리가 강제로 영사관에 진입해 미국 정부의 재산을 탈취해야 직성이 풀린다. 우리의 대책은 주동적이라야 한다. 해방구 정부는 미국 정부와 외교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미국영사관이 누리는 모든 권리는 국민당 정부에게 얻은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 인민정부에게 선양에 주재하는 영사관원들은 외국 교민이다. 보호 대상이지 외교업무를 주고받을 이유가 없다. 외국 교민은 군관회가 선포한 법령을 준수해야 한다. 군관회는 인신(人身)과 실내를 수색할 권한이 있다. 자유행동을 금지하고 강제로 출국시킬 권한도 있다. 무전시설을 압류해서 잘 보관해라. 쌍방이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전 영사관 관원들이 돌아오면 돌려줘야 한다.”
군관회는 미 영사관 봉쇄, 직원 연금
19일 밤, 군관회 주임 천윈(陳雲·진운)이 회의를 소집했다. “내일 오후 1시 시원하게 대변(大糞)볼 준비해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저항이 있을지 모른다. 대항은 금물이다. 때리면 맞아라. 미 영사관 무전시설과 발전기를 몰수해 봉인한 후 쌍방의 서명을 잊지 마라. 모욕적 행위를 엄금한다. 쓸데없는 대화 나누지 말고 다른 물건에 손대지 마라. 무기 휴대를 불허한다.” 중앙이 지시한 후속 사항도 설명했다. “주석의 명령이다. 영사관을 봉쇄하고 관원들은 분산시켜 연금에 처한다. 훗날을 생각해 여지를 둬라. 감금이라는 용어는 입에 올리지 마라. 식음료는 충분히 제공한다. 영사관에 근무하는 외국 교민이나 중국인의 출입은 모른 체해라. 가족 왕래와 전화도 허용한다. 서신은 우리가 대신 전달한다. 몰수가 끝나면 전원을 절단해라.”
저우언라이가 군관회 간부들에게 마오쩌둥의 구상을 전문으로 보냈다. “미국은 장제스와 국민당을 지지한 지 오래다. 중공은 미국을 적으로 대한 적이 없다. 국민당 지지를 철회하고 승인해주길 바랄 뿐이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추방할 이유는 없다. 제 발로 나가야 제 발로 돌아온다. 동북은 소련, 외몽골, 북조선과 인접한 특별한 지역이다. 중공 중앙은 소련의 안전과 이익도 고려해야 한다.”
소련과 이란에 20여 년간 근무했던 워드는 황당했다. 연금기간 별꼴을 많이 겪었다. 평소 순종만 하던 중국인 직원들이 밀린 월급 달라고 불만을 표출했다. 여직원 한 명이 워드에게 대들었다. 참다못한 워드가 주먹을 휘두르자 여직원이 계단으로 굴러 떨어졌다. 동북 전역이 들고 일어나자 마오쩌둥이 워드의 체포를 지시했다. 워드와 영사관원들이 공안에게 끌려나올 때 1000여 명이 몰려와 “미 제국주의 타도”를 외쳤다. 재판에 회부된 워드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추방됐다.
신중국 선포 2개월 후인 1949년 12월 11일, 무장한 공안의 감시 받으며 영사관 관원들과 함께 남행열차에 오른 워드는 웃음을 잃었다. 중공은 워드 일행을 태운 미국 수송선이 영해를 빠져 나가기까지 오성홍기를 게양하라고 요구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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