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시기별 사회적 갈등 풀어야 인격·도덕성 갖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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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에이징
“화천대유(火天大有) 하세요.”
‘대장동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최근 유행하는 인사말이다.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으라는 뜻인 데다 주역 64괘 중 최상의 점괘라니 최고의 덕담을 건네는 셈이다.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수사 결과에 따라 화천대유가 향후 한국 사회에서 덕담이 될지 냉소적 비난을 의미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 대한민국호를 이끌어 갈 대통령 선거가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판에 대선이라는 큰 장이 열릴 때마다 전개되는 아수라(阿修羅) 정국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한 ‘막장 현실’이 매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실시간 생중계되고 유권자들의 분노 게이지는 상승하고 있다.
막장 드라마보다 더 심한 ‘막장 현실’
통상 막장 드라마는 성공과 이권을 향한 악인들의 폭력성과 범죄, 무자비한 배신, 잔인한 복수 등 문명사회에서 비난과 금기의 대상이 되는 내용을 단골 소재로 삼는다. 당연히 방영되는 내내 시청자나 평론가들로부터의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청률은 부동의 1위인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무의식에 숨겨둔 인간의 원초적 공격성과 파괴 본능(타나토스, Thanatos)을 가상의 공간에서 안전한 방법으로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특히 악당의 비참한 말로, 무기력하던 선인(善人)의 통쾌한 복수 장면 등은 카타르시스도 제공한다.
반면 권력층과 주변의 모리배들이 야합한 뒤, 천문학적 이권을 향해 아귀처럼 달려들어 부당한 거액을 독점하는 막장 현실은 시민들에게 울분과 좌절, 상대적 박탈감 등 부정적 감정만 안겨준다.
정치판 막장 현실의 해악은 막장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파괴력과 치명적인 범사회적 악영향을 미친다. 우선 사회적 지명도와 영향력을 갖춘 인사들의 은밀한 뒷거래와 벼락부자 소식은 일상의 희망을 박탈하고 시민들은 벼락거지가 된 느낌이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패륜 행위가 강자나 유능함의 표상처럼 왜곡될 위험성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5가지 항목(공정한 국정 운영, 미래 비전, 추진력, 국민소통 능력, 도덕성) 중 하나를 꼽으라는 설문 조사에서 도덕성은 4.9%로 최하위로 나타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랜 세월 세도가들의 파렴치한 행위가 누적되자 국민은 지도자의 도덕성에 개의치 않으려는 모양새다. 국정 운영만 잘하면 부도덕한 사람도 지도자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소인보다 군자에 가까운 지도자 뽑아야
공자는 인간을 품성에 따라 인격자인 군자, 그리고 비인격자인 소인으로 구분했다. 군자는 사적 이익보다 국가·사회의 이익을 우선하는 도덕적 인물이며 소인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 있는 부도덕한 사람이다.(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정신의학적으로는 인격자가 되려면 성장 과정에서 각 시기별로 극복해야 할 사회적 갈등과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이 제시한 8단계 인격 발달 과정〈표 참조〉은 성숙한 인격을 갖추려면 평생 쉬지 않고 인격을 연마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연 도덕성 낮은 소인배, 혹은 비인격적인 지도자가 국가를 빛내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 특히 지금은 세계화 시대라 선진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으려면 국가원수의 수준도 다른 선진국과 격이 맞아야 한다.
유럽의 강대국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도덕적인 지도자가 통치도 잘한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녀는 취임 후 줄곧 화려한 총리 관저 대신 기존에 살던 작은 아파트에 거주했으며, 재임 기간 16년 동안 사소한 부패나 스캔들에 연루된 적도 없다. 동네 슈퍼에서 장을 직접 볼 정도로 소박하고 휴가지에 갈 때는 본인은 총리 관용기로, 남편은 민항기로 출발한다. (독일은 민간인 배우자가 총리와 같은 관용기를 타려면 민항기보다 비싼 탑승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공자도 탄복할 인격과 도덕성을 갖춘 메르켈 총리는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취임 당시 실업률 11%이던 독일 경제를 회생시켰고 국내 정치도 성숙시켰으며 탁월한 외교력도 발휘했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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