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민주당 여성의원 3명 “나도 낙태했었다” 고백 파문
바이든, 법무부-의회 동원 텍사스 총공격
플로리다 등은 비슷한 낙태금지법 추진
지난 30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하원의회 의사당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원 감독·개혁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민주당 소속 여성 연방하원 세 명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가 낙태해야 했던 과거를 잇따라 고백한 것이다.
미주리주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하원의원인 코리 부시(44) 의원은 이날 “17세였던 1994년 여름 미시시피 교회 캠프에 갔다가 성폭행당해 임신해 낙태했다”며 “평생 비밀로 묻어두려 했지만 이젠 이 사실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출신 바버라 리(75) 의원은 “고교생 때 임신을 했는데 당시 미국서 낙태가 불법이어서 멕시코 뒷골목까지 찾아가 낙태 시술을 받았다. (1970년대까지) 우리 세대 여성들은 낙태 수술 받다 죽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워싱턴주 출신의 프라밀라 자야팔(56) 의원도 연이은 임신으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다 낙태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에 플로리다 출신의 공화당 남성 의원 캣 캐맥(33)은 “내 어머니는 첫 출산 뒤 심장마비를 겪어 의사로부터 낙태 권고를 받았다. 어머니가 낙태 권유를 거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낙태를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는 한 달 전 텍사스주에서 초강력 낙태금지법이 발효된 이후 미국 사회가 진보와 보수, 여성과 남성 등으로 찢겨 충돌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뉴욕타임스(NYT) 등은 전했다.
미국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텍사스주는 지난달 1일부터 “임신 6주차 이후엔 태아도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 생명체”라며, 성폭행이나 근친 간 임신 등의 경우에도 낙태 수술을 원천 금지하는 일명 ‘심장박동법’을 시행했다. 이는 1973년 임신 중기까지 낙태권을 보장한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뒤집는 것이어서 논란이 됐다. 또 낙태 당사자와 의료진, 이를 도운 이들에 대해 제3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걸 수 있게 하고 주정부가 제소자에게 1만달러 이상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전례 없는 감시 체계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요즘 미 남서부는 텍사스 주법을 피해 원정 낙태를 하려는 여성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NYT와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전했다. 텍사스 남부에 사는 여성들의 경우 수백㎞를 12시간씩 운전해 인근 오클라호마와 미시시피, 아칸소주 등의 낙태 클리닉으로 몰려들고 있다. 오클라호마주의 한 산부인과는 8월에 낙태 수술을 11건 했지만, 9월엔 텍사스 여성들이 몰려들면서 수술 건수가 10배 폭증했다. 텍사스 인근 병원에서 수술 예약을 잡기가 힘들자 서부의 LA 혹은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가는 이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미 진보 세력과 여성계 등은 텍사스주의 낙태금지법을 비판하고 나섰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 에바 롱고리아 등 유명 연예인들 수백 명은 낙태권 보장을 촉구하고 텍사스에서의 촬영 중단 등을 요구하는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배우 우마 서먼은 자신의 낙태 과거를 밝히며 낙태금지법 폐지를 촉구했다. 차량 공유 기업 우버와 리프트는 낙태하는 여성을 태운 운전자의 법률 비용을 대겠다고 했다. 파타고니아·벤앤제리·보디숍 등 진보 성향이 강한 기업과 테크 기업 100여 곳이 텍사스 낙태금지법을 비판하거나 자사 직원의 낙태를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플로리다·사우스다코타 등 보수 성향 주들은 텍사스의 낙태금지법에 고무돼 비슷한 법안을 속속 추진 중이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은 보혁 갈등을 낳고 있는 텍사스 낙태금지법을 내심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킬 정치 이슈로 보고 있다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 등은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과 남부 국경의 불법 이민자 폭발 사태 등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바이든 정부가 2022년 중간선거에서 낙태 논쟁을 고리로 진보·중도층을 다시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텍사스의 낙태금지법 발효 즉시 “위헌”이라며 정부 차원 대응을 지시, 연방 법무부는 텍사스주 법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신청과 본소송을 제기했다. 하원은 지난달 24일 연방 정부가 모든 주 여성의 낙태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을 가결했지만, 여야 동수인 상원에선 통과가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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