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이번엔 북한 두둔... “美가 구체적 인센티브 제시해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 인센티브(유인책)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현 상황을 방치하면 북한의 미사일 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선(先)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북핵 협상 경색의 책임을 핵·미사일 개발에 몰두하는 북한이 아니라 대북 제재를 유지하는 미국에 돌리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이다. 정 장관은 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북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한 경고 없이 ‘종전 선언’을 재차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은 북한이 최근 한 달 새 4번째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공개한 직후 나왔다.
정 장관은 1일 공개된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미·북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상호 불신(不信)’ 등을 꼽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의 인센티브를 촉구했다. 그는 “불신은 단번에 해결될 수 없다”며 “협상 테이블에서 종전 선언 등 더 구체적인 조건을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상태가 계속된다면 결국 북한 미사일 역량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인터뷰는 정 장관이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지난달 23일 이뤄졌다. 정 장관은 현지 싱크탱크 대담에서도 북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에 대한 ‘보상’ 필요성을 거론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라고 했다.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해서도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 외교 수장이 미국에 가서 노골적으로 중국·북한 편을 든 셈이다.
미국의 입장과 거리가 한참 먼 정 장관 발언에 대한 미 측의 불쾌한 감정은 WP 기사에도 드러나 있다. 정 장관 인터뷰 기사에 등장한 미 고위 관계자는 “북한과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고, 협상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했지만 북한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화를 거부하는 쪽은 북한이라는 반박이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30일(현지 시각) “거듭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위반으로 역내 불안정과 불안감을 초래하는 북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이는 불안정성과 위험 가능성을 더 키울 것”이라고 했다.
외교 수장이 동맹을 자극하는 논란성 발언을 잇따라 한 것은 결국 남북 이벤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엔 총회에서 종전 선언을 제안했던 문 대통령은 1일 경북 포항 해병대 제1사단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에서도 “우리의 든든한 안보 태세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종전 선언을 국제사회에 제안한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우리 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를 참관하면서 “미사일 전력 증강이야말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확실한 억지력”이라고 했다. 그 직후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했다며 문 대통령을 실명으로 비난했다. 이후 이뤄진 북한의 신종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에서 ‘도발’이라는 표현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와 관련, 김부겸 국무총리는 30일 닛케이신문 인터뷰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북한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 총리는 IOC가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북한의 참가 자격을 2022년 말까지 정지시킨 데 대해 “IOC의 관대한 조치를 바란다. 그렇게 되면 남북 고위 당국자가 자연스럽게 베이징에서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가 언급한 ‘남북 고위 당국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베이징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에만 장거리순항미사일(11~12일), 단거리 탄도미사일(15일), 극초음속 미사일(28일), 신형 지대공미사일(30일) 등 4차례에 걸쳐 무력 도발을 이어갔다. 그 중간중간에 김정은·김여정이 ‘종전 선언’ ‘정상회담’ ‘통신선 복원’ 등 관계 개선 연기도 피웠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를 ‘도발’로 보지 말라는 주장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 남북 정상회담에 집착하다 김정은 남매의 강온 전략에 휘둘리고 한미 동맹 균열까지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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