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웃음에 대하여

- 2021. 10. 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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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불안·절망 완화시키는 치료제
힘들 때일수록 '스마일의 여유' 찾자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늘 자살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들 그가 자살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자연수명을 다 누렸다. 그의 언행 불일치에 배신감을 느낀 이들이 왜 자살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반문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자살해야 한단 말인가? 이 말은 그럴듯하지만 내게는 납득되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다. 태어났다는 재난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태어남의 불편과 재난에서 도망치는 일에 바빠서 미처 자살을 실행하지 못했을까?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때조차도 사람은 당장 자살하지 않고 잘 산다. 왜 그럴까? 개나 고양이는 자살하지 않는다. 이들은 즉물적 존재로 오직 현재만을 살뿐더러 동물 내면에는 자살의 동기가 되는 어둠이나 절망이 깃들 수 없는 까닭이다. 동물과는 달리 극한의 절망과 불안을 품은 사람조차 자살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 웃음, 내일,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들이 사라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자살을 할 게 분명하다.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자살은 환멸과 무기력에 빠진 자가 세상을 향해 내보이는 최후의 결단이고 용기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은 더 이상 환멸할 수 없고, 더 이상 절망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지도 모른다.
장석주 시인
나는 사람이 자살하지 않는 이유로 웃을 수 있는 능력을 들었다. 개는 만족감이 넘칠 때 꼬리를 흔들고, 고양이는 가르랑거린다. 개나 고양이가 웃는 법은 없다. 오직 인간만이 웃는다. 인간의 웃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기의 웃음이다. 그 웃음은 순수하고 무해하다. 보들레르는 “어린아이의 웃음은 마치 꽃의 개화와 같다”고 했다. 당신은 언제 웃는가? 마음이 즐거운 상태일 때 웃음이 터진다. 웃음은 해학과 유머, 유쾌한 농담과 장난끼, 그리고 불합리함에서 불거진 타인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반응이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은 웃음을 유발한다. 이때의 웃음은 인간적이면서도 풋내기 사탄의 심술궂은 감정적이고 신체적인 반응이라고 할 만하다. 타인의 예기치 않은 실수가 우리 안의 무의식적 자만심을 자극해서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바보 연기에 뛰어난 코미디언도 우리를 웃게 만든다. 무대에서 강등된 존재를 흉내 내는 유랑극단의 광대나 코미디언의 말과 행동은 대중의 우월감을 자극한다. 그들은 도저히 실수를 하거나 실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늘 실수하고 실패한다. 대중은 어리석음과 불합리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에게서 위안거리를 얻고, 아직 인생은 살 만하다고 여긴다.

웃음을 철학의 명제로 탐구한 바 있는 베르그송이란 철학자는 웃음을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사회라는 신체의 마디마디에 활력과 여유를 불어넣는 일종의 사회적인 제스처라고 했다. 웃음이라는 우리 신체에서 일어나는 반경련적 움직임은 생각보다 복잡한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이것은 사회생활 중에 나타나는 행동, 언어, 제스처로 여겨진다.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웃음은 우리를 옥죄는 신경성 긴장의 방출이고 해소다. 이것은 확실히 정신의 경직에 대한 처방이다. 한바탕 웃고 나면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던 긴장은 누그러지고 굳은 얼굴은 여유를 되찾는다.

웃음은 뇌의 기획물이 아니다. 웃음은 어느 순간 경련 발작이 일어나듯이 자동발사되는 폭탄이다. 만족감에 취한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듯이 정신적 충만감, 진정한 행복, 쾌락의 찰나 우리 안에서 신경성 잉여 에너지의 방출이 일어난다. 진정한 웃음, 흔쾌한 웃음은 인생의 불합리나 불행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기술이고, 불안과 절망을 견디게 하는 오래된 처방이다. 웃음은 환희의 출발점이 아니라 그 끝이다. 웃음 뒤에 씁쓸해지고 공허감이 깃드는 이유가 그 증거이다. 웃음은 인생이 끔찍함을 누그러뜨리는 치료제이자 제 안의 비천함을 무화시키는 방어 기제이다. 웃음이 인생의 고됨, 나쁜 기억, 갖가지 불행과 공포에 대한 보상이라면, 당연히 더 많이 웃는 사람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힘들 때 하늘을 보고 웃어보자.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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