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동화의 교훈

- 2021. 10. 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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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좌석 옆에 비치된 잡지 틈에서 표지가 알록달록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이 동화가 주는 교훈은? 다음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친절하게도 바로 밑에 나와 있는 정답 때문이었다.

수용미학의 관점에서 모든 독자는 다르게 읽는다지만, 하나의 텍스트에 백 개의 해석도 존재한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동화에서 어떻게 이런 교훈을 추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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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좌석 옆에 비치된 잡지 틈에서 표지가 알록달록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 학습지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펼쳤더니 마침 짧은 동화가 실린 페이지가 나왔다. 원숭이 꽃신. 제목을 보는 순간 아! 하고 속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어린 시절에 읽었으나 그 후 수십 년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동화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읽어보니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원숭이가 오소리에게 꽃신을 선물받았다. 신어보니 예쁘고 폭신폭신하고 따뜻하고 여러모로 좋았다. 계속 신으니 꽃신이 해졌는데 다행히 오소리가 새 꽃신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부지런히 신으니 곧 닳아버렸다. 그러자 오소리가 계속 공짜로 줄 수는 없다며 꽃신 값으로 잣을 요구했다. 원숭이는 잣을 주고 꽃신을 얻었다. 새 꽃신이 필요할 때마다 오소리가 원하는 잣 개수는 점점 더 많아졌다. 그러나 꽃신에 익숙해져 더는 맨발로 다니지 못하게 된 원숭이는 오소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원숭이는 잣을 모조리 상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소리의 심부름까지 해주며 그의 종처럼 살게 됐다.

다시 읽어보아도 이 짧고 단순한 이야기가 잠깐의 편안함 때문에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살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이토록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좋은 글은 예나 지금이나 좋고, 어린이에게 좋은 글은 어른에게도 좋은 글이리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다음 페이지로 눈을 돌렸다. 거기 퀴즈가 있었다. 이 동화가 주는 교훈은? 다음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는데, 그것은 친절하게도 바로 밑에 나와 있는 정답 때문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으면 안 된다.

세상에, 이게 무슨 정답인가. 수용미학의 관점에서 모든 독자는 다르게 읽는다지만, 하나의 텍스트에 백 개의 해석도 존재한다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동화에서 어떻게 이런 교훈을 추출하는가. 그러나 코웃음 치다가 문득 돌아보니 나 역시 아이에게 타인의 친절을 경계하라 이른 적은 있어도 자립심이나 주체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사람 조심하라는 경고가 필수적인 요즘 세상, 동화의 교훈도 이렇게 세상 따라 바뀌나 싶어 나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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