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과 콩나무' 소년의 죄를 밝혀라 [책과 삶]
[경향신문]
마술 피리
찬호께이 지음·문현선 옮김
검은숲 | 600쪽 | 1만7800원
많은 동화들이 그렇듯 ‘잭과 콩나무’ 역시 곱씹어보면 찜찜한 이야기다. 잭은 콩나무를 타고 올라 거인의 집에서 재물을 훔친 뒤 콩나무를 잘라 거인을 죽이고 만다. 강도 살인으로 부자가 된 소년 이야기라니, 동화라기엔 너무 섬뜩하지 않은가. 홍콩의 추리소설가 찬호께이는 2008년 발표한 첫 소설 <잭과 콩나무 살인사건>으로 원전의 섬뜩함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잭의 혐의를 법정에서 가려보자는 것이다. 영국의 귀족이자 법학 박사인 라일 호프만이 조수 한스 안데르센과 함께 거인 살인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흥미로운 두뇌게임을 벌인다.
<마술 피리>는 동화 속 사건을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문법으로 파헤치겠다는 설정부터 눈길을 끄는 소설집이다. 앞서 <13.67> 등으로 중국어권 미스터리 소설의 매력을 세계에 알린 작가 찬호께이는 <잭과 콩나무> <푸른 수염> <피리 부는 사나이> 등 널리 알려진 동화 속 세상을 범죄의 세계로 탈바꿈시켰다. 재해석의 관건은 현실적 고증과 냉정한 논리다. 작가는 수록작 ‘하멜른의 마술 피리 아동 유괴사건’을 쓰기 위해 배경이 되는 독일 하멜른을 직접 여행하는 등 동화 속 중세 유럽을 고증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작가의 치밀함 덕분에 현실의 세계로 내려온 동화는 한층 ‘인간적’이다. 정답고 따뜻하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처럼 복잡하고 입체적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사회문제를 꼬집어 정의를 구현해내는 원작 동화의 권선징악적 결말을 포기하진 않았다. 가장 빠른 직선 경로를 두고 일부러 험지로 둘러가는 엉터리 내비게이션 같다. 책의 안내에 따라 험지를 구르며 예상 밖의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찬호께이가 세공해낸 추리소설의 장르적 재미에 푹 빠져든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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